해가 바뀔 때면 늘 해맞이를 해왔다. 
여럿이 혹은 홀로, 가차이 혹은 멀리서..
이번엔 어디로 갈 것인가 고민에 빠졌다, 비는 내리고..
남쪽으로 길을 잡는다. 
영광, 함평 지나 목포, 영암 지나 강진,
찬바람 쓸쓸한 병영성 들러 장흥에 당도하니 이미 밤이 되었다. 

갑오년 섣달 초닷새, 이방언이 이끄는 농민군이 장흥성을 함락하고 부사 박헌양을 죽였다. 
양력으로는 섣달그믐, 바로 오늘이다. 
기세가 오른 농민군은 닷새 후 강진 병영성을 공격하여 이 또한 함락시켰다. 
다시 닷새 후 장흥 석대들에서 혈전이 벌어진다. 

하여 나는 석대들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새해를 맞으려 한다. 

장흥과 강진 경계 사인암(사인정)을 오른다. 
멀리 제암산을 배경으로 장흥 읍내 불빛이 반짝거린다. 

눈 아래 석대들이 펼쳐지고..

제암산, 사자산 지나 호남정맥 흘러가고 억불산이 이를 지켜본다. 

발아래 탐진강, 그 너머 자울재가 보인다. 

12월 15일(양력 1895년 1월 10일), 이 들판에서 혈전이 벌어졌다. 
농민군은 자울재를 넘어 석대들을 가득 메우며 장흥부로 진격해 들어왔으나 조일연합 토벌군의 화력을 당해내지 못하고 다시 자울재 너머로 퇴각한다. 
당시의 전투상황을 순무선봉진등록(관군 토벌 기록)은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부대가 잠시 쉬는 사이 뜻밖에 비류 삼만 명이 남으로는 높은 봉우리 아래로부터 북으로는 뒷산기슭 주봉까지 산과 들 가득히 수십 리에 뻗혀 봉우리마다 나무 사이로 기를 꽂고 함성을 질러 서로 호응하며 포를 쏘아대며 날뛰어 창궐하니 그 세력을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이요 성내 부민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아우성이었다. 일본군 중위와 상의한 뒤 통위병 30명으로 뒷산 주봉의 적을 막게 하고, 본 부대 병사는 일본군과 더불어 성모퉁이 대밭에 매복하고, 먼저 민병 수십 명을 내보내 평원으로 유인하게 하였다. 그리고 양로에서 공격하여 나가니 적의 전열이 차례로 무너져서 진격하고 싸우기를 반복하여 총을 쏘아 죽인 것이 수백 명이었다... 20리 밖 자오현(자울재)까지 추격하자 해는 이미 서산에 걸려 있고 북풍 찬바람은 불어오고... 남쪽을 바라보니 깊은 계곡이 구불구불 이어져 있고 대숲이 빼곡히 들어서 있어 잘못될 염려가 있을까 하여 즉시 본진으로 돌아왔다.

기러기 한 떼 줄지어 난다
처량히 울며 줄지어 난다
수많은 목숨 앗아버린 총탄자욱이
산허리를 수 놓아둔 채 말이 없는데
그 슬픈 추억 지닌 채 저 산 너머로
기러기떼 줄지어 난다.

해는 자울재 너머에서 올라왔다. 

붉은 태양과 함께 자울재를 넘는 무수한 농민군을 본다. 

.

그러나 해는 이내 구름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붉은 기운만이 그의 존재를 입증한다. 
붉은 노을 한울에 퍼져 핍박에 설움이 받쳐..
한울도 울고 땅도 울었다 가렴주구에 설움이 받쳐..

무연분묘위령비
장흥 공설묘지 동학농민혁명군 묘역

석대들 부근에서 옮겨 안장한 1,700여 무연분묘, 이들 대부분이 석대들 전투에서 전사하거나 이후 토벌대에 의해 색출 처형된 농민군들이라 전한다.
그들은 지금도 자신들의 옛 싸움터를 내려다보고 있다. 

안주도 없이 한 병 부어드리고..
뭔가 다짐도 하고.. 

갑진년을 값지게, 
승리의 새해로!!
 
 



'먹고 놀고.. > 여행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름 바당 한라산 제주도 3박4일  (5) 2024.01.11
여기는 정선..  (0) 2022.10.10
난생처음 병원 신세  (0) 2022.08.23
울릉도, 그리고 박정희  (0) 2021.09.01
저동 일출, 섬을 떠나다.  (0) 2021.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