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면 동네 앞 저수지에 날아와 석양이 물든 하늘을 뒤덮는 가창오리의 군무를 보면서 저놈들은 얼마나 많길래 여기까지 날아와서 저 야단일까 싶었다.
그런데 가창오리의 그 군무를 전세계 오직 우리만이 볼 수 있다는 사실, 내가 보는 가창오리떼가 전세계 가창오리의 대부분이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노랑부리백로도 그렇다.
전세계 생존 개체 2천여마리 뿐이라 한다.
그 대부분이 한반도 서해안에 서식하고 있다 하니 우리가 보지 못하면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보지 못하는 새가 되고 말 것이다.
비교적 흔한 백로 종류 중에 왜 유독 노랑부리백로만이 얼마 남지 않은 멸종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논이나 하천에서도 흔히 볼 수 있고 야산 소나무 숲에 둥지를 트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 여타 백로무리와 달리 서해안의 갯벌과 인적 없는 섬 지역에서만 번식하는 까다로움이 지금의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나 짐작할 따름이다.
갯벌이 사라지고 매립되는 만큼 갯벌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들이 위기에 처하게 됨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 사람을 포함해서..


모내기가 한창이던 6월 7일 비명에 가신 분 조문 뒤끝의 가시지 않는 술기운에 하루 일을 접고 바닷바람 쐬러 간 길. 
해리 활뫼 저수지물이 서해 바닷물과 만나는 동호항 인근 갯벌에서 노랑부리백로를 만났다.
노란 부리와 휘날리는 야성 깃든 저 풍성한 갈기가 노랑부리백로만이 지닌 특징이다.


노랑부리백로와 쇠백로가 한자리에 섰다.
비교해보시라.
쇠백로는 갈기깃이 적고 부리가 검으며 발이 선명하게 노란 차이가 있다.


기다리던 님이 나타난걸까?
노랑부리백로 두마리 다정하게 발을 맞추며 갯벌을 거닌다.


이따금 동네 앞 저수지에 황새가 날아오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도 이미 귀하신 몸이었던지 황새가 저수지에 나타나면 면장님이 테레비에 나왔다.
"방장산 맑은물.."로 시작되던 당시 면장님의 인터뷰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리고 며칠 후 농약에 중독되었는지, 누군가 놓은 독극물에 희생되었는지 황새가 죽자 면장님도 어디론가 사라졌던 일이 있다.
중학교 다닐 때의 일이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났다.
여전히 많은 철새가 날아오지만 황새는 영영 보이지 않는다.
갈곡천 어디엔가, 인천강 어디엔가 황새가 날아온다 하는데 아직 본 적이 없다.
이제 황새를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아닌 다른나라 어떤 사람들이 되었다.

노랑부리백로의 운명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손에 달려 있다고 생각된다. 
갈기털 휘날리는 노랑부리백로의 우아한 자태를 오래도록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