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술을 마시고 홍규형 작업실에서 잠을 잤다.
작업대 위에 뒹굴고 있는 옛날 판화 한점, 전농련 깃발을 앞세운 농민들의 경운기 시위 행렬을 '아스팔트 농사'라는 이름으로 형상한 작품이다. 
'90이라는 연도표기로 보아 90년도 초반 전농이 창립되기 직전에 창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 무렵이면 나는 89년 가을 농사짓는다고 고창에 내려와 상하면 병길이 형하고 겨울을 나고 막 집으로 들어갔을 때이다.
본래 1년 정도를 더 상하에 머물면서 농사일을 손에 익힐 작정이었으나 성내면에 농민회 창립 움직임이 있다는 말을 듣고 바로 집으로 간 것이다. 그리고는 분에 넘치게 총무직을 수임하였다.
전농련은 89년 3월 1일 농민운동의 단일조직 건설을 목표로 결성된 과도기적 조직으로 약 1년간 활동하였다.
고추투쟁, 수세투쟁 등 현장 농민들의 대중투쟁을 전국단위 투쟁으로 모아낸 2.13 여의도 투쟁 직후에 결성되었으니 군사독재 정권의 모진 탄압을 뚫고 성장한 농민 대중투쟁의 역사적 산물이라 할 조직이다.
1년 후 전농이 건설되었으니 전농련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사적 소임을 정확히 수행한 셈이다.

그리고 올해 전농은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지난 20년 전농의 역사는 가히 '투쟁의 역사'였다.
하지만 지난 투쟁의 역사가 승리의 역사라 말하기에는 미흡함이 있다.
우리는 아직 결정적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싸움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전농은 내외의 무수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이는 본질에 있어 역대 정권의 농업 파괴와 희생에 기초한 경제발전 전략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바로 그러한 질곡을 깨고 새로운 농민세상을 향해 달려온 농민운동이기에 놈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20년, 성년을 맞는 전농은 이제 스스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
혁신과 단결, 강고한 대중운동에 기초한 농민 정치세력화로 농민집권, 민중집권을 향해 발돋움해야 한다.


지난 20년 전농과 함께, 아니 그 이전부터 농민운동 현장에 굳건히 뿌리내리고 농민대중과 함께 살아온 예술가가 있다, 
미술동인 '두렁' 출신으로 80년대 초반 현장에 투신하여 오늘까지 살아남았다.
우리는 그를 일러 '농민화가'라 부르는데 거리낌이 없다.
농민화가 박홍규 화백, 그는 11월 전시회를 준비하며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늘 술 먹자고 귀찮게 찾아드는 나같은 사람만 없었더라도 전시회를 이미 열고도 남았을 터인데 미안하기 짝이 없다. 
전농 20년 농민운동의 역사를 오롯이 담을 11월 전시회를 기대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