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포의 아침. 울릉도에서 맞는 마지막 아침이다.
눈을 뜨니 하늘이 발그레하다.
해는 동짝에서 뜨는데 서짝 하늘은 왜 달아오르는가?
사진기를 챙겨 밖으로 나선다.

학포는 고종 임금의 명을 받아 조사 임무를 띠고 울릉도를 방문한 이규원 검찰사 일행이 처음 발을 디딘 곳이라 한다.
이규원 검찰사는 10여 일간 울릉도 구석구석을 답사한 내용을 왕에게 상세히 보고하고 이를 토대로 조정은 개척령을 내려 개척민들을 섬으로 이주시킨다.
불과 130여 년 전의 일이다.
이처럼 유서 깊은 학포에서 하룻밤을 묵고도 흑비둘기를 제대로 보겠다는 일념이 지나쳐 이규원 일행이 남긴 자취를 온전히 느끼고 기록하지 못하였다.

여기저기서 흑비둘기들이 날아오른다.
대부분 나를 먼저 본 녀석들이 날아오른 다음에야 녀석들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니 좀처럼 사진에 담을 수가 없다.
마을을 지나 계곡에 들어서니 물 마시러 모여들었던 흑비둘기들이 산지사방으로 흩어져 후박나무 숲으로 스며든다. 
역시 한 장도 찍지 못하였다.
좋은 자리를 잡고 차분히 기다려야 하겠는데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되질 않는다.

학포에 도착한 날 해질 무렵 담은 사진

결국 한 장도 담지 못하고 숙소로 발길을 돌린다.
숙소 근처 무화과나무, 동박새들이 무화과를 파먹느라 부산하다. 
사진기를 들이대니 이럴 수가 그냥 동박새가 아니라 한국동박새들이다.  

옆구리의 짙은 밤색 깃털이 '나 한국동박새요'라고 말하고 있다.
텃새로 사는 동박새와 달리 한국동박새는 번식지와 월동지를 오가는 이동시기에 드물게 관찰되는 귀한 녀석이다.
여기서 이 녀석을 본 것은 횡재와 다를 바 없다.
20~30마리 정도 되는 녀석들이 떼로 몰려다닌다.

참새들이 떼로 몰려 지저귀고 있는 곳, 이 녀석들은 그냥 참새가 아니라 섬참새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울릉도와 제주도에서 텃새로 살고 있다 한다.

보람찬 아침 탐조를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  목욕하는 사이 숙소 베란다에서 영태가 흑비둘기를 찍어놓았다.
흑비둘기 서식지라 공식적으로 이름 붙어 있는 사동에는 가보지 못했으나 학포의 흑비둘기는 우리 동네 멧비둘기만큼이나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