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나비, 풀, 꽃/새 이야기
동림 들판 밭종다리
동림 들판 밭종다리
2018.02.20명절 뒤끝 텅 빈 마을은 중 떠난 절간보다도 고요하다. 맹칼없이 틈 밑 들판으로 차를 몬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텅 빈 들판, 한무리의 작은 새들이 떼 지어 날아다닌다. 관심없이 보면 그저 참새떼겠거니 하겠다. 하지만 이래 저래 노는 품새가 다르다. 잠시 차를 멈추고 새들을 기다린다. 약간의 인내심만 발휘한다면 새들은 굳이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다. 어지러이 날아다니던 녀석들이 내려 앉는다. 밭종다리다. 몸 윗면은 회갈색이며 불명확하게 가는 흑갈색 줄무늬가 있다. 눈 앞은 엷은 색. 턱선이 뚜렷하다. 다리는 붉은색을 띠는 살구색, 허리에 줄무늬가 없다. (겨울깃) 머리, 등이 갈색이며 불명확한 줄무늬가 있다. 몸 아랫면은 흰색 기운이 강하며 검은 줄무늬가 여름깃보다 더 뚜렷하고 진하다. 흰색 날개선이 ..
혹독한 겨울, 굶주린 가창오리
혹독한 겨울, 굶주린 가창오리
2018.02.10급격히 날이 풀어지고 눈이 마구 녹아내린다. 오는 봄을 어찌 막을쏘냐. 하지만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한파의 위력은 어마 무시했다. 얼어붙은 저수지, 눈 덮인 들판은 월동 중인 가창오리들에게는 꽤 큰 시련이었을 것이다. 지금 동림 저수지에는 가창오리들이 없다. 아마도 해남 방면으로 더 내려갔겠지.. 그런데 눈 덮인 논바닥에 내려앉아 먹이활동 중인 가창오리 한 무리를 보았다. 신림 들판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변 농사가 잘 되지 않아 수확을 포기한 채 방치된 논이었다. 누가 보건 말건 허겁지겁 주린 배를 채우기에 여념이 없다. 가창오리는 본래 밤에 먹이 할 동을 한다. 지금 이 시각이면 드넓은 호반에 모여 앉아 한가로이 휴식을 취할 때이다. 하지만 강추위와 폭설이 불러온 위기상황에서 녀석들은 대규모 군집생활과..
입춘대설, 눈 속의 새
입춘대설, 눈 속의 새
2018.02.05입춘대설, 이번 겨울 들어 가장 많은 눈이 내렸다. 봄이 왔으되 봄이 아니다. 얼어붙은 날씨에 눈까지 내리니 새들이 고달프다. 물닭들이 얼어붙은 저수지를 뒤로 하고 길바닥에 나앉았다. 몹시 지친 녀석들 사람이 다가가도 잘 도망가지 않는다. 떼거지로 조문 가는 문상객 같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더라고 물닭 본 김에 들판을 잠시 돌아본다. 기러기 한 떼 눈 쌓인 논에 망연자실 앉아 있다. 참새만 한 녀석들은 그래도 뭘 좀 먹는다. 주로 쑥새들이지만 드물게 이것저것 섞여 있다.
곰소만 황새
곰소만 황새
2018.02.03동림지 아래 들판에서 방달이(솔개)를 보고, 내친김에 수앙리 들판으로 간다. 갈곡천 하구 갯벌에 바닷물이 그득하다. 엊그제 보름달이 떴으니 때는 마침 사리 물때로다. 황새를 볼 수 있겠군.. 아니나 다를까, 예의 그 자리에 그린 듯이 앉아 있다. 망원으로 당기니 바다 건너 줄포가 손에 잡힐 듯하다. 한 마리 먼저 훌쩍 날아간 빈자리를 가늠하면 녀석들 정확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다. 물이 차오르면서 한 마리 두 마리 자리를 뜬다. 바다 건너 줄포와 이짝 고창 갯 뚝 곳곳에서 황새들 날아다닌다. 10마리 이상은 되어 보인다. 많이도 와 있군.. 어지러이 날던 녀석들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중 한 녀석 수앙리 들판 논에 내려앉았다. 무수한 왜가리, 백로 떼들 사이에서도 한눈에 띄는 녀석들, 군계일학이라고나 할까..
방달이 떴다.
방달이 떴다.
2018.02.03하늘 높이 솔개가 난다. 그 옛날 '애국조회' 시간이면 틀림없이 떠 있던 녀석들, 주로 나른한 봄이었을 것이다. 하늘을 뱅뱅 도는 솔개를 보고 있노라면 교장선생 말씀 따위는 귓전에 와 닿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 녀석들이 정말 솔개였을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하늘 높이 떠서 뱅뱅 도는 녀석들을 우리는 통칭 '방달이'라 불렀다. 예전엔 솔개가 흔했다 하니 아마도 솔개였겠지.. 혹은 더 흔했을지 모를 길 떠날 채비하는 말똥가리였을 수도.. '방달이'를 검색하니 이런 글이 걸린다. "매와 비슷하면서 가슴이 붉고 등이 희며 눈이 검은 것을 방달이(方達伊)라 하는데 매도 죽일 수 있다." 조선시대 사람이 쓴 '한죽당섭필'이라는 책에 나오는 우리나라 맹금에 대한 묘사 중 한 대목이다. 딱 솔개다. 매도 죽이는지는..
눈 쌓인 들판, 들판에 머무는 새
눈 쌓인 들판, 들판에 머무는 새
2018.01.15동림 저수지 아래 눈 쌓인 들판을 간다. 뚝 너머 저수지 가득 가창오리 떼 웅성거리고, 하얀 들판 너머 두승산 떠 있는 곳, 그동안 보이지 않던 가창오리는 엊그제 눈 오는 날 다시 왔다 한다. 불가촉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린 가창오리, 그러거나 저러거나 가창오리 떼는 창공을 자유로이 오간다. 오히려 사람들이 발이 묶였다. 지금 우리 동네는 아무나 들어오지 못한다. 물론 형식적인 것이지만.. 실로 오랜만에 눈 내린 들판에 새 둘러보러 간다. 눈 쌓인 논바닥을 뒤지는 한 무리 새떼를 발견했다. 그냥 보기엔 참새떼, 그런데 덩치가 좀 크다. 나는 품새에 지저귀는 소리까지 다르다. 음.. 종다리들이로군,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런데 집에 와 살펴보니 비슷하지만 제각각이다. 헷갈리는 멧새류, 들여다보자니 눈이 침침해진..
지리산 잣까마귀
지리산 잣까마귀
2017.08.18새재 마을에서 치밭목 거쳐 천왕봉을 오른다. 간간이 비가 내리고 산은 온통 구름과 안개에 갇혔다. 중봉에 다다를 무렵 앞서가던 등산객 우는 새소리 뭐냐 묻는다. 까마구 소리 아니냐 무심코 답하고 나니 까마구 아니다. '잣까마귀로구나!' 내심 이 녀석을 보게 되리라는 기대가 없지 않았다. 부리나케 렌즈를 갈아끼워 놈을 겨냥한다. 몇 해 전 이 녀석들을 보겠다고 설악산을 오른 적이 있다. 줄기차게 쏟아지는 굵은 빗줄기를 뚫고 오른 대청봉, 비에 젖은 흑백 사진으로 간신히 알현했던 잣까마귀.. 너하고 나는 어찌하여 뿌연 안개 속 흑백사진으로만 만나게 되는가? 다행히도 사람을 그리 경계하지 않는 녀석들, 가까이 다가와 나와 마주한다. '잣까마귀'라는 이름자는 깃털에 박힌 잣 모양의 흰 반점에서 비롯되었음이 분명..
2017 호사도요(Greater painted-snipe) 관찰기
2017 호사도요(Greater painted-snipe) 관찰기
2017.06.24바닷가 옆 간척지 논에 도요새들이 가득하다. 메추라기도요, 학도요, 흑꼬리도요, 청다리도요, 알락도요, 꺅도요..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장거리 여행, 북상 중인 도요새 무리들은 영양보충에 여념이 없다. 귀한 손님 안 계시나.. 휘리릭 둘러보는 눈길 저 멀리 호사도요 한쌍 눈에 들어온다. 단언컨대 어지간해서는 좀처럼 집어내기 어려운 거리, 하지만 나는 호사도요만큼은 금세 찾아낼 수 있다. 있기만 하다면.. 호사도요와 나의 인연은 길고도 각별하다. 10여 년 전 논에 앉은 황로 무리 사이에서 우연히 발견한 호사도요 암컷, 참 특이하게 생긴 오리가 다 있다 싶었다. 두어 달간의 망각기를 지나고서야 오리 이름이 궁금해졌고 탐조 사이트에 문의한 바 오리가 아니라 몹시 귀하게 관찰되는 도요류임을 알게 되었다. 그..
소쩍새, 그라고 솔부엉이
소쩍새, 그라고 솔부엉이
2017.04.24밤마다 귀찮게 울어대던 녀석들을 오늘은 내가 불러내 귀찮게 한다. 소쩍새나 솔부엉이나 거의 같은 시기에 도래한다. 녀석들은 이동 초기에 소리를 많이 낸다. 이 시기에는 심지어 낮에도 운다. 밤새인 주제에.. 아마도 짝을 찾거나 자신의 영역을 선포하는 등의 의미가 있지 않겠나 싶다. 이때가 녀석들을 관찰할 수 있는 적기, 소쩍새 소리를 내면 소쩍새가 솔부엉이 소리를 내면 솔부엉이가 나타난다. 바로 지금이 그렇다. 깊은 산중보다는 동네 낭깥이 좋다. 녀석들은 거짓말같이 홀연히, 그리고 바람처럼 나타난다. 짝으로 오인하는 것인지 침입자를 물리치러 오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소쩍새를 먼저 불러낸다. 소쩍새는 우렁찬 소리에 비해 몸집이 작다. 매미보다 좀 크다는 생각이 들 정도.. 좀 심한가? 좌우튼 작다. 이 녀..
수리부엉이(Eurasian Eagle-owl)
수리부엉이(Eurasian Eagle-owl)
2017.03.02하얗게 손짓하는 덕유산 주릉을 제대로 눈에 담아보겠다고 인근 야산을 오르다 만난 수리부엉이. 주위를 둘러봐야 둥지가 있을만한 서식환경이 아닌데 대낮에 나타난걸 보니 아마도 새끼가 딸린 듯.. 산 아래 우사에 드글거리는 쥐를 잡으러 오지 않았나 싶다. 훌쩍 날아 소나무에 앉는다. 그 자리 가만 있으라 하고 먼지 앉은 망원렌즈를 달고 돌아오니 역시 그 자리 그대로 있다. 그 언젠가 아침 나절 멧돼지 사냥길에 찜해둔 긴점박이올빼미를 해질 무렵 그 자리에서 사진에 담은 적이 있다. 하루 종일 꿈쩍 않고 있었던 모양이라..반갑다 수리부엉이새들의 아련한 시선이 좋다.안보는 척 나를 본다.그래 그렇게 대놓고 보자고.. 안잡아묵는다. 너 닥도 잡아묵제? 폐닥은 안묵는다고? 그려.. 닥은 우리가 잡으마..주식인 쥐로 하..
노랑부리저어새(Eurasian Spoonbill)
노랑부리저어새(Eurasian Spoonbill)
2016.12.17저수지보다는 작고 둠벙보다는 큰 우리 동네 방죽에 한 무리 새떼가 내려앉았다. 노랑부리저어새, 귀하신 몸 천연기념물 205-2호. 300마리 미만의 적은 수가 10월 중순 도래하여 3월 하순까지 머물며 월동한다는데 30여 마리가 모였으니 대략 10%. 물 빠진 방죽, 짠질짠질 미세하게 일렁이는 얕은 물속에 주뎅이를 처박고 연신 휘휘 저어가며 식사 중이다. 비는 내리고.. 배가 고픈 겐가 차가 지나가건 말건, 누가 쳐다보건 말건 제 볼일에 열중이다. 다소 까칠한 녀석들인데.. 녀석들 덕분에 실로 오랜만에 사진기에 망원렌즈 달아본다. 렌즈 후드에 서린 거미줄을 걷어냈다. 진짜로.. 고맙다. 노랑부리야.
새끼를 거느린 호사도요
새끼를 거느린 호사도요
2016.06.28이른 아침 호사도요가 살고 있는 논으로 간다. 이른 아침에 오길 잘했다. 녀석들은 사람 다니는 길 쪽으로 많이 접근해 있다. 이번에는 단박에 찾았다. 그간 익숙해졌는지 어미도 과히 나를 경계하지 않는다. 불과 1미터 정도를 후진했을 따름이다. 이른 아침이어서인지 새끼들을 길게 자주 품는다. 이렇게 새끼를 품은 채로 서서 밤을 새우나? 논둑에 올라가지는 않을 터이고 그렇다고 따로 둥지도 없고.. 번식에 성공한 녀석들은 이 녀석들뿐일까? 암컷은 어디에 있을까? 새끼를 돌보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부근에 있을 터인데.. 많은 것이 궁금해진다. 좌우튼 고생이 많다, 호사도요. 호사도요는 암컷의 세력권 안에 여러 마리 수컷이 함께 서식하는 일처다부제 습성을 지니고 있다. 호사도요 암컷은 오로지 알을 낳아주는 것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