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4일 광화문에서 열린 민중총궐기대회에 참석하려던 전남 보성 농민 백남기(69)씨가 경찰의 고압 물대포를 직사로 맞고 쓰러지자 시민들이 그를 구하고자 애쓰고 있다. 코피를 흘리며 쓰러진 백씨는 뇌진탕 증세를 보였고, 서울대병원으로 긴급히 후송해 수술을 받았으나 20일 현재 아직까지 의식불명 상태다. 공무원U신문 제공



대한민국 수도 서울 종로 한복판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한 농민이 쓰러졌다. 69세의 늙은 농민을 겨냥한 거센 물줄기는 초겨울 앙상한 가지에 의지해 버티던 마지막 낙엽을 떨구듯 그이를 아스팔트 위에 거꾸러뜨렸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놈들은 그 낙엽을 아예 치워 없앨 요량으로 거침없는 물폭탄을 잔인하게도 쏟아 부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동료들에 의해 구조된 그이는 최상의 의료진, 첨단의 의료장비로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서울대병원 중환자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


농민 백남기, 전남 보성, 69세. 그이는 학창 시절 박정희 유신 독재에 맞선 민주화 운동의 투사로 살았고 80년대 초반 낙향하여 나머지 반평생을 땅을 일구는 농민으로, 가톨릭농민회 농민운동가로 살아왔다. 이처럼 강직하고 선량하게 살아온 그이를 누가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했는가?


보성에서 서울은 멀고도 먼 길이다. 전국농민대회와 민중총궐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그이는 새벽밥도 챙겨먹기 힘든 이른 시각에 집을 나섰을 것이다. 어디 그이뿐이겠는가? “못살겠다 갈아엎자”는 각오를 저마다 안고 전국 각지 수만의 농민들이 함께 떨쳐나섰다.

전국에서 올라온 수만의 농민들은 20년 전으로 돌아가 버린 개 사료 값만도 못한 쌀값에 분통이 터지고, 그 와중에도 미국산 밥쌀수입에 목을 매는 박근혜 정부의 행태에 억장이 무너지고 있었다. 농민들은 ‘쌀값보장, 밥쌀수입 반대’ ‘FTA, TPP 반대’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 쟁취’ 등 농민의 염원이 담긴 상여를 앞세우고 행진하였다.


그러나 그 행진은 박근혜 정부가 쳐놓은 차벽에 가로막혔다. 이명박 정부 시절 등장한 경찰버스 차단벽은 집회와 시위, 통행과 이동 등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가로막는 것으로 하여 이미 오래전에 위헌 판정을 받았다.

극히 제한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차벽을 설치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자 위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들은 차벽을 설치하고 그 뒤에서 물대포를 쏘아대고 있었다. 쌀값보장과 밥쌀수입 반대가 적힌 농민상여도 차벽에 도착하자마자 물대포에 박살이 나고 말았다.

농민들은 현장에 있던 노동자들과 합세하여 줄을 걸어 차를 잡아당기며 경찰 차벽을 걷어내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불법적이고 위헌적인 차벽을 제거하기 위한 시위대의 항의행동을 불법폭력이라 매도하는 것은 도둑이 매를 들고 설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오히려 차벽 뒤에 숨은 경찰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불법이고 위헌이다. 하지만 이미 만단의 채비를 갖춘 경찰 차벽은 요지부동이었다. 여기에 더해 경찰은 물대포와 고농도 최루액 무차별 살포로 맞섰다. 경찰의 대응은 가히 살인적이었다.

이미 어둠이 깃든 오후 7시 무렵 그이가 경찰 차벽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와 맨 앞줄에서 밧줄을 잡았다. 살기등등한 경찰의 물대포에 이미 수많은 부상자가 발생하여 119 구급차량이 여러 차례 부상자를 후송해 간 그 현장의 맨 앞장에 선 것이다. 일평생을 민주화 운동과 농민운동에 헌신해 온 백발 노구의 농민 백남기, 그이는 그 순간 무엇을 생각했을까? 어떤 심정으로 밧줄을 부여잡았을까? 밧줄을 부여잡던 순간 그이는 이미 개인이 아니었다.


어떻게 올라온 서울인데 이대로는 내려갈 수 없다는 농민들의 억센 투지와 각오, 그럼에도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수만의 농민이 함께하고 있었다. 그 순간 그이는 이 땅 3백만 농민의 분노와 염원, 고통과 희망을 한 몸에 걸머지게 되었으니 그이가 살인적 물대포에 쓰러진 것도, 생사의 고비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도 모두가 이 땅 농업농민의 운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제아무리 가리고 덮으려 해도 진실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정부와 새누리당, 검찰과 경찰, 보수언론이 한 덩어리가 돼서 폭력시위 엄단, 주동자 처벌, 구속을 떠들어대고 있지만 그들이야말로 처벌과 구속, 단죄의 대상이다. 물대포를 앞세운 불법적 살인진압의 책임자 강신명 경찰청장은 파면과 동시에 응당한 죄과를 치르게 해야 하며 대통령이 직접 나서 3백만 농민과 전체 국민 앞에 사죄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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