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보러 간다. 

이북 출신 빨치산들의 비원이 서린 달뜨기 능선, 나에게는 그 위로 떠오르는 보름달을 보겠다는 약간 오래된 바람이 있다. 

달뜨기 능선 위로 떠오르는 보름달을 보자면 '조개골과 쑥밭재 언저리에 마련한 비트'를 찾아야 되겠는데 그럴 수는 없겠고 쑥밭재 부근 혹은 쑥밭재 지나 두류봉에 이르는 능선 어디 조망 터지는 곳에 시간 맞춰 당도하는 것이 일이 되겠다. 

열사흗날 뜨는 달을 봤더니 정동쪽에서 남쪽으로 한참 치우쳐 동남쪽에서 떠올랐다. 
하니 쑥밭재 부근이면 달은 과연 달뜨기 능선 위로 떠오르겠더라. 

이짝 길은 하봉, 영랑대 지나 한번 내려와 본 적이 있으나 짙은 운무 속에서 길을 여러 차례 놓치기도 하였고 청이당터니 쑥밭재니 하는 곳을 확인하지 못한 채 지나쳐 자신감이 다소 떨어진다. 

이래저래 걱정이 앞서던 차에 마침 노선이 같은 산꾼 두 분을 만났다. 

이 분들하고는 천왕봉 지나 장터목까지 동행하게 되었으니 나는 귀인을 만난 것이다.  

 

 

키를 넘는 산죽 하며 길이 거칠고 헷갈린다.

이 길로 수십 번 오르내렸을 산꾼도 잠시나마 알바를 하더라.

 

 

청이당터 못 미쳐 누운 폭포와 인근 작은 암벽 숲 사이로 조망이 터져 달뜨기 능선이 바라다 보인다.

여기서 달을 기다렸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보다 감회 깊게 떠오르는 달을 볼 수 있었겠다.

하지만 여기 머무르기엔 시간이 너무 이르고 우당탕거리며 쏟아지는 물소리가 너무나 컸다.

 

짐작컨대 청이당터 부근을 지나고 있다.

이번 걸음에도 청이당터니 쑥밭재니 하는 장소를 확인하지 못하고 지나쳤다.

해발 1,200미터가 넘는 고지, 옴팡하고 평평한 지형, 이짝 저짝에서 내를 이뤄 물이 흘러든다.

배낭 양짝 찡겨온 4리터 물이 무색하다.

달 뜰 시각이 다가오니 맘이 급해진다.

걸음을 다그쳐 오른 능선 조망처, 달은 이미 달뜨기 능선 위 허공에 둥실 떠 있다.

 

 

좀 늦기도 했지만 아까 그 자리, 계곡 조망처가 달맞이 명당자리였음을 깨닫는다.

어찌 됐건 달뜨기 능선 우게 한가위 보름달이 둥실 떴다.

둥근 보름달을 보며 떠나온 고향을 그렸을 빨치산들의 피 끓는 심사를 헤아려본다.  

"그대 돌격의 함성이 높을 때 나의 실물레소리 끊임없네. 그대 찬란한 미래를 위하여 승리하고 돌아오라"

돌아오지 않는 연인을 기다리던 고향의 마음은 또 어떠했을까?

모진 세월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빨치산들의 피 끓는 심사가 어린 듯 황혼빛을 받은 초저녁 보름달이 붉게 물들었다.

 

 

달을 보는 사이 어둠이 깃들었다.

전화기 불 켜고 괴춤에 찔러 고정시키니 이마빡 렌턴  못지않다.

그리 많이 걷지 않았다. 

영랑대에 뜬 달 창백하게 빛나고 환한 어둠 속 반야봉, 정령치를 넘는 불빛 하나 빛난다. 

자리를 펴고 누웠다. 

 

 
 
 

밤을 새워 달려온 달이 반야봉을 지나 서쪽 하늘 너머로 사라진다. 

 

달 넘어가고 해 올라오고..

 

해 올라오니 구름 따라 일어나고..

 

지리산에 오면 자꾸 반야봉만 봐진다.

반야봉이 구름 속에 들면 지리산이 심심해진다.

반야봉 없는 지리산은 무료하다. 

 

중봉 너머 천왕봉, 천왕봉에서 반야봉까지 지리산은 하나다.

어디 지리산뿐이랴, 산천도 하나, 겨레도 하나..

우리는 하나다. 

 

하봉
 

해유령 배맨바위, 부처로도 보이고 애기 보듬은 엄마(이 역시 부처)로도 보인다.

옛날 옛적 바닷물이 산릉을 넘을 때 배를 매 두었다네. 해유령(蟹踰嶺)은 게가 넘어간 고개라는..

골을 메운 운무, 산을 넘는 구름에서 비롯된 선인들의 상상력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산에서 만난 또다른 귀인(도솔산인)한테서 많이 듣고 배운다. 

 

발 아래 치밭목산장
저 멀리 달뜨기능선
중봉에서 보는 천왕봉
천왕봉 그리고 반야봉

미륵불이 계시다 하여 구부다 봤다.

과연 누군가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모냥새 그대로 미륵바위 계시더라.

 

저 멀리 덕유산
능선은 언제나 갈之자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들리는 건 오직 맑은 물소리

번잡한 속세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네

아 그러나 나는 돌아가야 한다네

한줄기 바람처럼 살기엔 너무도 사회적인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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