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준 평전「봉준이, 온다」
위인전과 평전은 어떻게 다를까?
잘 알 수 없다. 위인전이건 평전이건 중요한 건 작가의 관점이 아닐까 싶다.
작가는 대상 인물은 물론 그가 살았던 시대까지 꿰뚫을 수 있는 역사적, 구조적 통찰력을 갖춰야 한다.
그런 면에서 '봉준이, 온다' 작가의 관점은 탁월하고 훌륭하며 치열하다.
여기에 더해 역사적 상상력(사료에 근거한 과학적 추론)과 담백하면서도 유려한 문장이 주는 문학적 감동은 덤이다.
이 책을 읽으면 일생을 두고 혁명을 준비한 조직가이자 혁명운동(농민전쟁)을 진두지휘한 사령관인 전봉준 장군을 만날 수 있다. 그의 사상과 실천, 인간적 고뇌, 그리고 장렬한 최후까지..
그가 건설하려던 세상은 어떤 것이었을까? 동학농민군은 무엇을 위해 끓는 피로 산하를 적셨을까?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동학농민혁명의 전 과정과 당시를 살았던 농민군의 숨결과 마주할 수 있다.
동학농민혁명을 오늘날 우리 운동의 원류, 자양분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꼭 읽어보시라. 곁에 두고, 두고 두고 뒤적거리며 참고하시고 오늘을 사는 교훈을 찾으시라.
두텁지만 잘 읽히는 책이다.
조선 시대를 통틀어 가장 격동적인 순간을 살았던 사람, 민란의 시대라고도 하고, 반역의 시대라고도 하던 그 세기의 한 복판에 장승처럼 서 있었던 사람, 밖으로부터 밀려오는 외세의 힘과 안으로부터 내리누르는 억압의 힘에 보란 듯 맞서기로 했던 사람, 뭇 생령이 시름시름 앓고 산하가 도륙되는 순간을 태울 듯이 응시하던 눈으로 그는 시대를 보았고, 시대를 살았고, 한 세기를 끝장냈으며, 마침내 시대가 되었다.
- 서문
전봉준과 농민군은 전투에서 패배했다. (그렇다 한들) 패배하고도 승리한 싸움을 보는 우리의 경외감이 사라지지도 않는다. 구조사構造史의 관점에서 동학농민혁명은 결코 패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한반도의 20세기는 저 갑오년에 시작되었다고. 한반도의 근대 또한 저 갑오년에 시작되었다고, 그러나 그 세기의 상처가 이렇듯 선연하다면 아직 20세기는 끝난 것이 아니라고. 그렇기 때문에 허리에 두른 족쇄를 걷어낸 한반도의 다음 세기를 열어젖히는 일은 우리 모두의 당연한 의무라고. 항구적 평화와 행복이 유보되어 있는 한 언제나 우리가 전봉준이라고.
- 종장
백성의 삶이 고단해지고 그 백성들을 위무할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을 때 백성들은 스스로 들불이 된다.
그러니 전봉준은 수많은 백성으로 환생하여 오늘을 살고 있지 않은가.
전봉준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는 들불이요, 현재형이다.
전봉준 없는 조선 역사는 허전하고 쓸쓸하다.
- 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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