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화산도, 내 그 존재를 알고 난 이후로도 손에 잡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재일 조선인이라는 작가의 배경, 무엇보다도 방대한 분량이 앞을 가로막았다. 

작가의 단편집 '까마귀의 죽음'을 먼저 읽고서야 결심이 섰다.

그리고 다 읽기까지 석 달 열흘 남짓..

 

일제로부터 해방된 우리 민족 앞에 펼쳐진 격동하는 남조선 정세, 일제를 대신하여 새로운 지배자로 등장한 미제, 미제를 정점으로 새롭게 재편되는 지배질서,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의 변신, 이승만 일당의 매국배족 학살행위, 민족분열과 분단 획책. 그리고 그에 맞선 민중들의 피의 항쟁.. 

4.3은 이런 정세 하에서 발발했고 제주도는 남한 전체를 통틀어 가장 첨예하고 치열하며, 가장 악랄하고 간악한 격돌의 현장이 된다.

"미국은 제주도가 필요하지 제주도민은 필요치 않다. 제주도민을 다 죽이더라도 제주도는 확보해야 한다" 
"반공국가 존립을 위해서는 제주도 전체를 희생해도 어쩔 수 없다"

미국과 그 꼭두각시들의 이해관계는 이렇게 일치되었다.

이들에게 반공이란 무엇이었는가? 

"친일파 처벌을 주장하는 것은 빨갱이, 게릴라 섬멸과 반공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애국"으로 포장되었다. 

(오늘날 자한당을 비롯한 수구 골통들이 벌이는 소동과 궤변은 당시 반공 투사로 변모한 친일 민족반역자들의 주장과 논리를 놀랍도록 고스란히 계승하고 있다. 자한당 무리를 '토착 왜구'라 규정한 것은 정확한 역사인식에 기초한 것이다.)

반공이라는 이름으로 애국으로 포장된 잔악한 학살행위가 남한 전역을 휩쓸었으며, 제주도에서 벌어진 전대미문의 학살행위로 극에 달했다.  

반면 당시 민중들의 투쟁은 친일청산과 통일독립국가 수립으로 요약된다. 

이 투쟁에서 가장 선두에 섰던 제주도 민중들과 그들의 싸움 4.3..

4.3은 통일독립국가 수립을 위한 제주 민중들의 무장항쟁이었고 미국과 이승만 일당은 이를 피의 학살로 짓밟았다. 

소설은 시종 '애국'과 '매국'이 어떻게 격돌하고 매도되며 왜곡되고 뒤바뀌게 되었는지, 진정한 애국세력이 어떻게 싸웠으며 어떻게 말살, 희생되어갔는지를 매우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소설은 4.3을 정면에서 다루고 있지 않다. 

중심인물이랄 수 있는 이방근은 조직원도, 유격대원도 아니다.

하지만 그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때로는 반혁명으로 공격당하기도 한다.

방관자이면서 방관자일 수 없는, 종국에는 중심 깊숙이 발을 들여놓고 끝내 죽음으로 결속 짓는 이방근의 삶과 투쟁..

이방근을 중심으로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과 그들의 관계, 등장인물들의 고난과 고뇌, 참을 수 없는 분노, 배신과 맹종..

소설은 당시의 시대상과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의 삶과 투쟁을 폭넓게 복원해낸다. 

 

작가 김석범 선생은 제주 출신이면서 일본 태생이다.

1925년생, 4.3 당시 그는 열혈 청년이었겠다.

아흔을 훌쩍 넘긴 지금도 정정하시다 한다. 

4.3 당시 제주도에 있지 못한, 함께 싸우지 못한 평생의 한을 가슴에 품고 사신 듯..

하여 소설 화산도는 제주도와 4.3에 대한 작가의 회한과 애정을 담은 필생의 역작이다.  

그이는 분단된 조국 어느 한쪽에도 몸을 담지 못하고 그저 조선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이의 소원은 4.3에 정명을 부여하는 일이라 한다.

4.3에 정명을 부여하고 조국을 통일하는 것, 이는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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