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10월 17일 박정희가 유신 쿠데타를 일으켰다.

비상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했다. 전국의 모든 대학에는 휴교령이 내려졌다. 

해남에 내려가 있던 김남주 시인은 그 이튿날 광주로 올라와 친구이자 동지인 이강과 함께 박정희의 폭거에 반대하는 유인물을 만들어 살포하기로 합의했다. 

 

김남주 시인과 이강은 거사를 앞두고 전봉준 유적지(황토현 일대)를 답사하며 결의를 다졌다. 

- 가을걷이가 끝난 초겨울 들녘

- 황토현과 백산에 올라 창의문을 소리 높여 낭송하고 생가(단소) 방문

- (비문을 손으로 쓸어보고 물끄러미 들과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짓는) 흰 옷에 갓을 쓴 노인들 목격

- 훗날 이 날의 심경을 형상한 시, <노래>(죽창가)를 남겼다. 

 

이들은 이후 <함성>지 사건으로 체포, 구속되어 10개월여의 옥고를 치른다. 

유신체제에 맞선 최초의 항거였으며, 이들에게 <함성> 지는 녹두장군의 사발통문이었다. 

 

노래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
꽃이 되자 하네 꽃이
피어 눈물로 고여 발등에서 갈라지는
녹두꽃이 되자 하네

이 산골은 날라와 더불어
새가 되자 하네 새가
아랫녘 윗녘에서 울어예는
파랑새가 되자 하네

이 들판은 날라와 더불어
불이 되자 하네 불이
타는 들녘 어둠을 사르는
들불이 되자 하네

되자 하네 되고자 하네
다시 한번 이 고을은
반란이 되자 하네
청송녹죽 가슴으로 꽂히는
죽창이 되자 하네 죽창이

 

김남주 시인은 창의문(백산 격문)을 이렇게 평했다.

"나는 지금까지 역사에서 이렇게 당당하고 간명하게 시대정신을 표현한 글을 읽은 적이 없다. 이것은 차라리 한 편의 시였다."

그는 1987년 무렵 감옥에서 창의문에 의탁하여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우리가 해방의 칼을 세워 그 주위에 모이니 그 본의가 다른 데 있지 아니하고
민중을 자본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고 조국을 이민족의 억압에서 해방시키고자 함이라
안으로는 정상모리배들의 머리를 베고 밖으로는 제국주의 신식민지 세력을 몰아내고자 함이라
재벌과 군벌 밑에서 고통받는 노동자 농민들과 고급 관리들 앞에서 기를 펴지 못하는 말단관리들은
우리와 같이 원한이 깊은 자라 일어나라 주저치 말고 만약 기회를 놓치면 후회해도 미치지 못하리라

 

김남주 시인에게 전봉준은 사상과 이념, 실천의 스승이었다.

그는 전봉준 장군과 동학농민혁명에 관한 여러 편의 시를 남겼다. 

 

녹두장군

 

무엇 때문일까

백 년 전에 죽은 그가 아니 죽고

내 안에 살아 있는 것은

내 가슴에 내 핏속에 살아 숨 쉬고

맥박처럼 뛰는 것은

 

나는 본다

들것에 실려 서울로 압송되어 가는 그의 얼굴에서

두 개의 눈을 본다

양반과 부호들에 대한 증오의 눈과

가난한 민중들에 대한 사랑의 눈을

(부분)

 

 

그가 보고 싶을 때 나는

들것에 실려 압송되어가는

한 시대의 패배 그 위대함을 그린다

갑오년 그해의 부러진 창

성난 얼굴 농부를 그린다

그러면 그는 내 안에 살아

피가 되어 흐르고

만경창파 들판 가득

옛 쌈터의 북소리로 내 잠든 혼을 깨운다

(부분)

 

고개

 

이 고개를 갑오년에는

빼앗긴 토지의 농민들이 넘었지요

짚신에 감발하고 을미적 을미적 

죽창 들고 넘고는 했지요 

 

이 고개를 을사년에는

빼앗긴 나라의 의병들이 넘었지요

무명 수건 머리에 질끈 동이고

화승총 메고 넘고는 했지요

 

넘었지요 넘고는 했지요 이 고개를 

허울 좋은 거품으로 온 해방은 가고

빼앗긴 독립의 빨치산이 넘고는 했지요

눈에 묻혀서 사라진 길을 열고

어둠에 묻혀서 사라진 길을 열고

 

이제 우리가 넘어야 할 차례지요 이 고개

빼앗긴 토지 나라의 독립을 찾아

옛사람이 남기고 간 발자국 발자국을 따라 

이제 우리가 넘어야 할 차례지요 이 고개

피 흘리며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

(전문)

 

황토현에 부치는 노래-녹두장군을 추모하면서

 

한 시대의
불행한 아들로 태어나
고독과 공포에 결코 굴하지 않았던 사람
암울한 시대 한가운데
말뚝처럼 횃불처럼 우뚝 서서
한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한 몸으로 껴안고
피투성이로 싸웠던 사람
뒤따라오는 세대를 위하여
승리 없는 투쟁
어떤 불행도 어떤 고통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던 사람
누구보다도 자기 시대를

가장 정열적으로 사랑하고

누구보다도 자기 시대를
가장 격정적으로 노래하고 싸우고
한 시대와 더불어 사라지는데
기꺼이 동의했던 사람

 

보아다오 보아다오
이 사람을 보아다오
이 민중의 지도자는
학정과 가렴주구에 시달린
만백성을 일으켜 세워
눈을 뜨게 하고
손과 손을 맞잡게 하여
싸움의 주먹이 되게 하고
싸움의 팔이 되게 하고
소리와 소리를 합하게 하여
대지의 힘찬 목소리가 되게 하였다

그들 만백성들은
이 위대한 혁명가의 가르침으로
미처 알지 못한 사람들과
형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새 세상을 겨냥한 동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외롭고 가난한 사람들이
아직까지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자유를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적과 동지를 분간하여
민중의 해방을 위하여
전투에 가담할 줄 알게 되었으니

(부분)

 

황토현 순례에 함께 했던 친구 이강의 회고

"두려움과 망설임을 벗어던지고, 우리는 즉시 민족의 부름 앞에 순명할 것을, 녹두장군과 갑오 애국 농민의 영령 앞에서 맹세하는 간단한 의식을 가졌다. 주저와 공포를 이겨낸 위대한 결단과 결의를 간직한 채 우리는 마이산으로 들어가 천지신명에게 우리의 소망, 우리의 염원을 빌었다."

 

위 내용은 '김남주 평전'과 '김남주 문학 에세이'를 참고하여 간추린 것이다. 

사서 읽어보시라.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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