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장군 순행도
박홍규, 녹두장군 순행도, 2015, 60x40cm, 목판화

전주화약이 성립된 6월로부터 재봉기하게 되는 10월에 이르기까지 농민군의 활동은 집강소를 중심으로 전개됐다. 이 시기 전봉준은 전라도 모든 군현에 집강소를 설치함은 물론 이를 합법적이고 체계화된 통치체계로 세우기 위해 끈질긴 노력을 쏟아부었다.
전봉준은 각 고을을 직접 순회하며 이를 추동하는 한편 관찰사 김학진을 집요하게 압박하고 재촉하여 집강소를 공인된 통치 기관으로 만들어나갔다. 전봉준은 김학진과 협조하여 합법적인 방식으로 폐정을 개혁하면서 전라도 전역을 손안에 거머쥐고자 했던 것이다.

8월 초 관찰사 김학진은 전봉준에게 “도인을 인솔하여 전주를 지킴으로써 국난을 극복하자”고 제안했다. 김학진이 말하는 국난은 일본군의 경복궁 침탈(7월 23일)과 전쟁 도발을 의미한다. 그간 전봉준과 주도권 확보를 놓고 밀고 당기기를 반복해 온 김학진이 외세의 침략이라는 민족적 위기 앞에서 농민군의 우위를 솔직하게 시인하고 국난 극복에 함께 나서자 제안해 온 것이다. 전봉준은 당시 남원에 있었다.

숙고 끝에 전봉준은 김학진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마음을 정한 전봉준은 반봉건 투쟁을 무엇보다 긴요하게 여기는 김개남을 찾아가 김학진과 함께 난국을 타개하자고 설득했다. 그리하여 어릴 적 소꿉동무요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을 함께 수행해온 전봉준과 김개남은 전주를 향해 나란히 출발했다. 그러나 출발한 지 오래지 않아 마음이 변한 김개남은 샛길을 통해 대오를 빠져나갔다. 국면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로부터 전봉준과 김개남 사이에 처음으로 틈이 생긴 날이다(전봉준 평전 <봉준이, 온다>, 이광재 지음).

8월 6일 전봉준과 김학진이 전주에서 마주 앉았다. 두 사람은 피차의 요구를 주고받으며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관민상화’에 합의했다. 관리와 백성이 상의하여 함께 다스린다는 역사상 초유의 실험에 착수한 것이다. 이날의 담판 혹은 협의가 성사될 수 있었던 것은 외세로부터 국권을 수호해야 한다는 전제 아래 두 사람이 반봉건 투쟁의 과제와 통치권 일부를 서로 내어주고 양보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관민상화’는 오늘날 ‘민관협치’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오늘날 진정한 민관협치는 어떻게 가능할까를 생각해본다. 보건대 오늘날 민관협치는 상당 부분 속 빈 강정이다. 대부분의 민관협치 기구는 그 역할이 ‘자문’에 그치고 있으며 실질적인 결정권과 집행권이 극도로 제한돼 있다.
또한 관은 이 기구를 법률적 제약과 예산, 인사권 등으로 통제하고 활용만 할 뿐 결정적 시기에는 팽개치기 일쑤다. 현재 조건에서 진정한 민관협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더욱 강력한 대중운동에 기반하거나 권력의 일부 혹은 전부를 교체해야 한다.

집강소 통치 시기 성사됐던 ‘관민상화’ 역시 농민군의 재봉기와 중앙 정부의 토벌 방침에 따라 더이상 유지될 수 없었다. 다만 관찰사 김학진은 자신 임기의 마지막 순간까지 관민상화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으니 갑오년 전라도의 짧았던 봄은 강력했던 농민군 무력과 범상치 않았던 정부관료 김학진의 만남이 이뤄낸 일장춘몽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날의 협의 이후 전봉준은 곧바로 각 고을의 집강소를 지휘 통솔할 도집강을 임명했다. 이는 집강소 통치체계의 커다란 도약을 의미한다. 집강소는 관민상화의 원칙 아래 전라도 각 고을의 치안유지까지 담당하며 폐정개혁을 더욱 힘있게 추진해나가게 됐으며, 나아가 2차 봉기를 준비함에 있어서도 커다란 인적, 물적 기반이 됐다.

전봉준은 전라도 모든 고을에 집강소를 설치하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다. 끝내 집강소가 설치, 운영되지 못한 나주와 운봉 지역을 도모하기 위해 한편으로 관찰사를 압박하여 나주목사를 파직케 하는가 하면 혈혈단신 적진에 찾아 들어가 담판한 일화는 오늘도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다.
<녹두장군 순행도>는 이 시기 전봉준 장군의 활동을 형상한 작품이다. 전라도 각 고을을 방문하여 집강소 설치를 추동하고 폐정개혁을 독려하는 한편 날로 악화되는 조선 정세를 예의 주시하며 재봉기를 한 땀 한 땀 준비해야 했던 그 시절 순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피곤에 찌들어 자꾸만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간신히 지탱하고 있다. 장군님의 피곤한 모습이 잘 표현됐다 하니 잘 살펴보시라.

한국농정신문(http://www.ikpnews.net) <동학농민혁명, 판화로 읽다>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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