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새끼는 아기돼지를 말한다.
좀 더 명확히 하자면 아직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은 어미돼지 태중에 든 새끼가 되겠다.
본래는 그랬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한다. 요즘은 생후 한 달이 안 된 갓 태어난 녀석들이 희생된다고도 하고..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돼지의 운명인 게지, 슬퍼 말어라 아기돼지야.
일찍 죽어 빨리 환생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겠다.

매우 느린 만연체 소설 '화산도'를 읽으면서, 참으로 술 좋아하고 한 잔을 먹어도 맛나게 먹는 주인공 이방근과 함께 많이 마셨더랬다.
그이가 마시면 나도 마시고 그이가 취하면 나도 몽롱해지는 하나 됨의 경지를 맛보았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유독 머릿속 깊이 각인된 술자리가 있었으니 '새끼회' 로 속 푸는 장면이 그렇다.
어떤 맛일까? 궁금하고 먹어보고 싶었다. 그러기를 몇 해였던가? 지난여름에 맛보았네.
제주 사람들과 술 마시다 우연히 그 얘기가 나왔던 것이고 택시 타고 몰려갔다지.

내 다시 가게 될 줄 알았다.
간밤 술자리가 남긴 옅은 숙취를 몰아내자 작정하고 한 시간을 걸어 서문시장에 갔던 것이다.
새끼회를 주문하니 먹어는 봤냐, 먹을 수 있겠냐 재차 삼차 확인하고 주문을 접수한다.

이방근은 엷은 핏빛을 띤 걸쭉한 새끼회를 숟가락으로 잘 저었다. 식욕을 돋우는 갖은양념 사이에서 어렴풋이 비린내가 풍겨 온다. 그러나 악취는 아니다. 이 적당한 비린내가 식후의 상쾌함을 남겨주었다.
새끼회는 태아를 양막(羊膜)과 함께 잘 다져서 식초·고추장·후춧가루·참기름·참깨 · 설탕 · 간장 · 마늘·파 등 갖은양념을 넣어 맛을 낸다. 거기에다 소중히 받아둔 양수(羊水)를 적당히 넣어 섞으면 완성된다. 이방근은 언젠가 주인에게 들은 적이 있지만, 새끼회의 태반은 아무것이나 다 되는 게 아니었다. 새끼를 밴 지 한 달 내지 한 달 반 정도 지난 것이 아니면 안 되었다. 돼지는 보통 114일을 전후로 출산을 하는데, 2개월이 지나 버리면 회로 먹기에는 적당치 않다. 또한 도살 후, 여름에는 열 시간, 겨울에는 24시간이 지나면 좋지 않다고 한다. 주인이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았다고 한 것은 그런 의미가 있었다.
이방근은 두세 숟갈을 계속해서 입에 넣었다. 오도독오도독 하는 상쾌한 감촉이 느껴질 만큼 가볍게 씹으면서, 작은 연골을 혀끝으로 골라내고 마셨다. 때로는 연골도 씹어 삼켰다. 양수와 피가 섞인 생명의 원초에서 솟아 나오는 듯한 깊은 맛이 갖은양념 맛을 제치고 입 전체로 퍼졌다. 처음 먹었을 때는 그 연한 비린내가 코를 찔러서 소주를 마시며 그 냄새를 없애곤 했었다. 그렇다고 너무 양념을 많이 넣어 이 미묘한 날음식이 지닌 생명의 냄새를 없애 버리면 그것은 더 이상 새끼회가 아니었다. 그리고 색깔은 역시 노랗거나 파랗지도 않으면서, 다름 아닌 살색 얇은 고기 조각을 덮은 연한 핏빛이 아니면, 이 냄새와 맛에 어울리지 않는 법이다. 이방근은 잘게 다진 고기 조각이 섞인 죽 모양의 걸쭉한 액체에 숟가락을 담그며, 양수가 생명의 냄새라면 생명은 핏빛을 띠고 있다고 생각했다.
- 화산도. 김석범 저

소설 속 본질의 맛과 얼마나 유사한지,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없다.
태중의 새끼가 아니라는 것과 양수를 쓰지 않는다는 것 말고는 글쎄..
비릿하고 걸쭉하며 흐물거리고, 오도독 씹히는 뼈, 강렬한 빙초산의 향, 소주와 어우러지는..
한 40도짜리 고소리술이라야 제격이겠다.
제주에 가시거든 꼭 한 번 맛보시라.
서문시장 학사식당을 찾으면 된다.

흰점찌르레기

용담동 주택가를 걷다가..

요 며칠 사이 다 읽어간다.

별도봉 비가

최상돈 글, 곡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
너의 그 아픔을 알면서도 말하지 못했지
열두 신 떼로 소리치던 그날의 목소리
나의 가슴 파고들어 깊이 박혔는데
아무 일 없는 듯 그저 가슴에 파묻고
걷고 걷고 걸으며 살자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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