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화북포구에서 곤을동, 별도봉, 사라봉 지나 주정공장 옛 터까지..
이 길에는 또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쌓여 있을 것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난과 불행 속에서 죽어갔을 것이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지금도 그 화를 가슴에 품은 채 살아가고 있을 것인가?
그 길을 걸었다. 

화북포구

1949년 1월 4일부터 5일 양일간 이곳에서 도무지 이유조차 알 수 없는 학살이 자행됐다. 
무장대의 공격에 대한 보복학살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군인들은 단지 젊다는 이유로 주민들을 학살하고 집과 세간살이를 모조리 불태워 마을 전체를 초토화시켰다. 
갑오년의 농민군 섬멸전, 1909년 '남한 대토벌 작전'과 이후 침략전쟁에서 무수히 자행된 일제의 학살만행이 미 군정의 비호 아래 고스란히 국방군에 전승되었다. 일제에 부역한 민족반역자들이 반공의 탈을 쓰고 미제의 충실한 개가 되어 날뛰는 세상이었다.  

1949년 1월 4일 어스름해질 무렵, 강한 서북풍을 따라 불길이 마을을 덮쳤다. 가난했지만 평화롭던 마을은 삽시간에 화마에 휩싸였다. 군인들은 횃불을 들고 다니며 초가집마다 불을 질렀고, 청년들이 보이면 잡아다 마을 앞바다 ‘드렁’에서 학살했다. 해안마을이 초토화된 경우는 드물다. 누구의 집이 먼저인지도 모르게 옹기종기 붙어 있던 초가집들이 순식간에 ‘와다닥 와다닥’ 소리를 내며 탔다. 하늘이 온통 시뻘겋게 변했다. 

말구르마(수레)도 불에 탔고, 제주 서쪽 더럭 마을에서 사 온 황소도 불에 탔다. 안곤을은 화북에서도 가장 가난한 마을이었다. 외지에서도 못 사는 사람들이 안곤을로 왔다. 바다에서 밀려오는 해초인 듬북(뜸부기)과 멸치가 흔해 이를 주워다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고통은 더 컸다.

“바닷물이 핏물로 벌겅해나수다. 바닷물이 들어올 때였으면 그 시체들이 바다에 끌려갈 뻔했다고 합니다.” 
“토벌대가 집마다 불을 붙이며 젊은 사람만 있으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잡아다가 바닷물이 찰락찰락(철렁철렁) 치는 데 세워 놓고 쏘았다. 썰물 때였으면 시체를 찾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 [제주 4.3] 핏빛 바다, 곤을동에 가신 적이 있나요(한겨레)

사라봉에서 바라본 한라산

1948년 말부터 1949년 초까지 약 5개월은 초토화에 의한 대토벌 및 선무공작기다. 그래서 제주 사람들에게는 집단 이별 시기이기도 하다. 형식적인 재판만으로 학살되거나, 수장학살, 그리고 제주바다를 떠나 육지 형무소로 끌려가 수감된다. 대다수가 행방불명되었으며 그 수가 3,500명에 이른다. 고향 제주에 마지막 머물던 곳이 주정공장이었다. 
- [최상돈의 4.3 순례] 애기동백꽃의 노래

희생자 추모 진혼굿

이어도 연유(최상돈 글/곡) 산오락회
바다를 뒤로한 곳에 주정공정 굴뚝이 보이고 그 위로 사람들이 창고에 갇혀 있습니다. 그곳이 마지막 이승이었습니다. 바다를 가다 수장 학살되어 대마도에 떠오른 원혼, 전국 형무소로 끌려가 어느 형무소에서 삶을 마감한 지도 불분명한 영혼, 이념에 갇혀 타국 타향에서 삶을 마친 영혼, 그리고 정뜨르비행장 등 제주섬에서 삶을 마친 영혼. 그래서 노래는 '차라리'입니다. 
- [최상돈의 4.3 순례] 애기동백꽃의 노래

박경훈, 그럼에도 밭을 일구다, 200X68 목판환
예술공간 이아

산국(최상돈 글/곡). 산오락회
산국, 어쩌면 가을 들판 억새를 닮은 듯, 별 보며 이별하고 그리워하는 꽃. 
산전길에서 여름 산수국을 만난 날, 그 이름에서 한라산 들녘 노란 산국을 떠올렸다.
일제강점기 36년 세월 동안 조선 민중들은 얼마나 많은 이별, 죽음으로 독립을 갈망했을지.
동백은 피고 지더니 그 자리 산국이 다시 핀다. 
-[최상돈의 4.3 순례] 애기동백꽃의 노래

2022년 4월 4일 높은오름에서 본 일몰

 

봉화(최상돈), 2023년 4월 2일 제주 아트센터

오름에 봉화가 오르는 것은 산이
진달래로 물드는 날이다
오름에 봉화는 꽃들이 다퉈 피기도 전에
피어올랐습니다
제주도의 봄은 진달래가 산을 물들이는
4월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돈댁의 백일잔치는 초하루고
순지오름 꽃놀이는 3일이다
가슴이 부풀어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4월
시민 동포여 경애하는 부모형제여
4.3 오늘 당신의 아들 딸들이 무기를 들고 일어섰다
조국의 통일독립과 민족해방을 위해
매국적 단독선거와 단독정부에 결사 반대하며
그대들을 고난과 불행으로 빠뜨린
미제와 그 수하들의 학살만행을 제거하기 위해
골수에 스며든 원혼을 풀어내기 위해 
제주도 인민유격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