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11(금) 3분 칼럼 -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라북도연맹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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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이 ‘농업개혁 수혜자의 잔존 부채를 전액 탕감’하는 법안에 서명했습니다. 이 법은 필리핀 정부의 농업개혁 프로그램에 따라 농지를 분배받은 농민들이 안고 있는 부채를 탕감할 목적으로 제정됐습니다. 이에 따라 61만여 필리핀 농민이 안고 있는 1조 3474억 원의 부채가 탕감될 예정입니다. 이 법을 발의하고 제정한 필리핀 상원의회 농업개혁 위원회는 “농민들이 부채와 빈곤의 악순환에서 벗어나 새 출발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필리핀에서는 1988년 토지 개혁 프로그램에 따라 농민들이 농지 대금을 30년 후에 상환하는 조건으로 농지를 불하했습니다. 하지만 농민들이 농지 대금을 제때 상환하지 못하여 원본 채무와 이자 부담에 시달리게 됐습니다. 농무부 장관직을 겸직하고 있는 필리핀 대통령은 법안에 서명하면서 “농민들이 막대한 부채를 갚을 길이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정부가 이들의 빚을 부담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토지개혁과 이후 필리핀 농정의 실책에 따른 국가책임을 인정한 것입니다.
이 법이 발효됨에 따라 필리핀 토지은행은 농가 부채 탕감 농민 26만 3,600여명의 명단과 대출 세부 사항이 담긴 문건을 필리핀 의회에 제출했습니다. 이들은 벌금 및 과징금을 포함한 약 3,386억 원의 대출 원금을 전액 탕감받게 됩니다. 또한, 토지은행과 농업개혁부가 34만 6,400여명에 대한 부채 내역을 필리핀 정부에 발송하면, 정부가 해당 문건을 접수하는 즉시 부채가 탕감될 예정입니다. 이들 농민들이 농업개혁부에 대출금을 미납하여 제기된 모든 소(訴)도 법원의 직권으로 기각되게 됩니다. 또한, 농업개혁 토지 보유에 따른 재산세 납부 의무에서도 면제됩니다. 

필리핀에서는 이 법을 일러 ‘신농민해방법’이라 부른답니다. 갚을 길 없이 늘어만 가는 농가부채의 굴레를 정부가 나서서 전격적이고도 입체적으로 벗겨준 것이니 가히 해방이라 할 만합니다. 갚을 길 없이 쌓여만 가는 농가부채는 비단 필리핀 농민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빚을 갚아보겠다고 아등바등 피땀을 쏟아부을수록 더 깊은 부채의 수렁으로 빠져드는 것이 우리 농민들이 겪고 있는 현실입니다. 어찌 농민들뿐이겠습니까? 나라의 GDP를 훌쩍 뛰어넘는 천문학적인 가계부채는 또 어찌할 것입니까? 효용성이 의심스러운 양곡관리법 일부 개정안조차 거부권을 행사하여 발로 차버린 윤석열 대통령 치하에서 부채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해방’을 바라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우리 농민들이 윤석열 정권 퇴진과 정치개혁 투쟁에 적극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