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후반 11월이었을 거이다. 

민둥산을 가겠다고 서울에서 농민대회를 마치고 정선으로 냅다 튀었던 뒤로 두번째 밟아보는 정선땅. 

일을 벌이려면 큰일을 치르고 난 직후가 좋다. 

전농 대대를 마치고 간단한 뒷마무리 끝에 곧장 정선으로 달려가 2박3일을 머물렀다. 

동강가 귤암리에 도착하니 밤 11시, 얼마나 깊은 산중에 들어왔는지조차 가늠이 안된다. 

밤을 새워 술을 푼 탓에 예정된 시각을 훌쩍 넘겨 정오가 지나고서야 예정된 돼야지몰이가 시작되었다. 



차를 달려 도착한 곳은 신동읍 매화동, 말이 동네지 이건 뭐 집들이 십리에 한칸씩이나 있다. 

밭이라고 흙보다 더 많은 돌이 구르고 있는가 하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경사지도 밭이라고 일군 흔적들이 있다. 

그래도 농사는 잘 된다니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양지에는 눈이 없으나 음지의 눈은 꽤 깊고 푸석거린다.



눈밭에 풀어놓으니 개들은 신이 났다. 

곰사냥, 호랑이사냥도 한다는 러시아 종자(라이카)들인데 지금 보여주는 짓은 우리집 강아지나 똑같다. 

예전 무주에서 같이 사냥에 나섰던 상처투성이 사냥개들과는 많이 다르다. 

경력 10년이 넘었다는 녀석도 별 흉터 없이 멀쩡해서 의아했는데 이 녀석들은 멧돼지를 몰거나 유인하여 잡아세우는 역할을 위주로 하는 일명 '왈왈이'들이라 한다. 

멧돼지와 정면대결하는 핏불 혈통 위주로 교잡에 교잡을 거쳐 만들어진 우스꽝스런 사냥개들하고는 격이 달라보였다.  

사냥꾼의 성향에 따라 다르겠는데 지금 우리는 '왈왈이'들만으로 사냥에 나선 것이다.  



무작스런 장원도 산의 된비알을 올라 날등에 서니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멀리 온순하게 보이는 봉우리가 산정에 철쪽이 흐드러진다는 두위봉.  



얼굴과 발목에 흰점이 있는 반달이. 썰개중의 썰개, 대장개다. 

이 녀석이 발정이 오기 시작한 암컷에게 계속 눈을 돌리는 바람에.. ㅎㅎ

주인한테 계속 혼이 나면서도 어느 틈에 암컷 옆에 가 있곤 한다. 

이 녀석 돼야지 봤어도 못본 채 했을 것이다. 



맨 왼쪽 '꼴통'하고 '반달'이만 확실히 알겠다. 



눈이 풍풍 빠지는 응달진 숲길을 헤치고 다시 능선에 섰다. 

이 근방에서 개들이 갑자기 비탈길을 쏜살같이 달려 내려간다. 

잠시 후 많은 개들이 되돌아오고.. 여전히 오지 않은 녀석들이 있다. 

저 아래 고랑에서 요란하게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목을 지키는 다른 사람들과 연락해보지만 여의치 않다. 

된비알을 타고 산을 미끄러지다시피 내려간다.

사냥꾼과 뒤따라오는 사람 사이에서 사냥꾼을 놓치고 곧바로 산을 치고 내려가 산기슭에 당도하였다. 



어디선가 '꼴통'과 '소서노'가 나타나 따라오라는 듯 앞장선다. 

살살 따라가보니 안동 출신 '길안'이가 있다. 

"뭐? 왜?" 이유를 알 수 없어 한동안을 개들과 함께 있었다.

이 녀석들이 왜이러지? 어디로 가지도 않고 ..

갑자기 꼴통이 늑대 울음소리를 낸다. 우오오오~

대체 무슨 일일가 하고 살펴보니 '길안'이 목에 올무가 걸려 있다. 

하! 이런 사냥개가 사냥당해부렀군.. ㅎㅎ

사냥개들은 이런 경우에 대비해 요동치지 않고 조용히 주인을 기다리는 훈련을 받는다고 한다. 

그래도 사람이 왔으면 풀어달라고 말을 해야지. 가만히 있으니 알 수가 있나?

목에 감긴 올무를 풀어주니 그때서야 움직인다. 

인내할 줄도 알고 의리도 알고 그놈들 참.. 신통한 녀석들 같으니라고.. 

개보다는 낫다 하는데 이런 경우엔 사람보다 낫다는 말이 어울릴 듯 싶다.



이 정도면 뭐 토끼 잡자고 놓은 것은 아닐 터.. 올무를 놓는 것은 옳지 못하다. 



다시 제자리, 이렇게 오늘 돼지몰이는 끝났다. 

돼지는 구경도 못했지만 산 한바탕 신나게 타고 잘 놀았다.

산속 외딴집엔 주인없이 시래기만 바람과 햇볕에 말라가고 있었다. 

주인양반은 날 풀리고 농사때나 되어야 올라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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