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꾼 조선낫의 세상살이


몇년을 별러왔던가? 

정선땅 동강변 바위절벽에 피어나는 동강할미꽃, 그 존재를 안 이후 나는 한해도 거르지 않고 그 곳에 가는 꿈을 키워왔다. 

그 꿈은 농민운동을 통해 실현되었다. 

정선땅에서 농사짓는 농민회원들과 연줄이 닿은 지난 겨울 막바지, 돼지 잡는다는 핑계로 몇차례 오며 가며 동강할미꽃이 피기만을 기다려왔다.  

드디어 봄이 왔고 꽃이 피었다. 

귀한 꽃 귀하게 보고 싶어 산에 올라 보기로 하였다. 

오며 가며 눈에 익혀 두었던 백운산, 백운산은 동강이 크게 휘돌아치는 곳에 수직의 절벽을 일으켜세워 보는것만으로도 사람을 압도하는 그런 산이다. 

점재마을로 올라 정상을 거쳐 능선을 타고 제장마을로 내려서기로 한다. 



몇채 안되는 마을을 지나 산기슭 밭을 지나니 산으로 드는 길이 열린다. 

곧게 솟은 바위절벽은 보기만 해도 한숨이 나올 지경인데 사진으로 박아놓으니 별 맛이 없다. 

능선에 이르기까지는 그럭저럭 순한 길도 나왔다가 가파른 나무 계단도 나왔다가 그저 그렇게 올라간다. 

동강물은 기차 달리는 소리를 내며 계속 따라온다. 

능선에 서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무엇보다 먼저 '추락주의' 표지판이 나를 반긴다. 



능선 끝 낭떠러지 위에 솟은 전망대에 들러 잠시 주위를 조망하고 본격적인 능선길 산행을 시작한다. 

능선까지 치고오르기가 어렵지 일단 능선에 오르면 쉬워지는 여느 산과는 영판 다르다. 

능선에서 본격적인 깔끄막이 시작된다. 

바위에 뿌리를 내려 풍상을 견디던 고사목이 사슴의 거대한 뿔이 되었다. 



잠시 뒤를 돌아보며 숨을 고른다. 

강물이 크게 휘돌아치며 만들어낸 이른바 한반도 지형, 배를 타고 들어가거나 산을 타고 들어가는 것 외에는 달리 들어갈 방법이 없다. 

동강에는 이런 지형이 곳곳에 발달해 있다. 



등산로에서 살짝 벗어난 절벽 끝에서 처음으로 마주친 동강할미꽃. 

이게 무슨 색이지? 연분홍인가? 

연부농 치마가 봄빠라메 휘나알리더라~



이건 무슨 색이지? 연보라? 색감이 완전히 다르다. 

밑으로는 동강이 흐르고 강물을 따라 산줄기도 흐르고.. 절벽 끝에 핀 동강할미꽃. 

이런 장면을 보자고 산에 올랐다. 화면을 가린 나무가 야속하다. 



산 아래로 점재마을과 마을로 들어오는 다리가 보인다. 

강물이 흐르다 빚어놓은 정말 작은, 손바닥만한 땅이다. 

정선을 여러차례 와 봤지만 논을 보지 못했다. 

우리나라 어디를 가도, 지어 제주도에 가서도 논을 보고 왔는데.. 

정선에도 있긴 있다는데 아직 보지 못했다. 



뱀이 기어가듯 구불거리고 흐른다 하여 사행천, 하지만 어떤 뱀이 이렇게 기어갈까? 

위경련으로 고통받는 뱀이라면 모르겠다. 

어찌되었건 산은 물을 건너지 않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 

산 없이 시작되는 강이 없고 강을 품지 않은 산이 없으니 산과 강은 하나이다. 

우리 조상들의 명쾌하면서도 단순한 지리학의 기본원리가 눈 앞에 장엄하게 펼쳐져 있다. 

지리에서 백두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장엄한 산줄기 백두대간과 정맥, 정간, 지맥들은 이와 같은 단순한 원리에 입각하여 체계화되었다.  



동강이 보이지 않는 정상으로 향하는 다소 깊숙한 능선에도 동강할미꽃이 피었다. 

산을 타는 내내 능선 곳곳에 동강할미꽃 군락지가 군데군데 자리잡고 있다. 

대부분 동강에서 솟은 직벽 위에 군락지가 자리잡고 있다. 




8시 15분 점재마을을 출발하여 10시 48분 정상에 당도하였다. 

두시간 반, 꽃사진 찍는다고 지체하지 않았다면 30~40분쯤은 일찍 올라왔겠다. 

정상은 시야가 확 터지지도 않고 의외로 밋밋하다. 

해발고도 882.4미터. 



휘돌아치는 동강을 바라본다. 산태극 수태극..



청노루귀를 단 한개체 보았다. 

내가 청노루귀다 하고 아무 꾸밈새 없이 으시당당하게 서 있다. 



크게 휘돌아갈지언정 동강은 막힘 없이 흐른다.

여기서 잠시만 더 내려가면 동강은 정선 땅과 이별하고 평창, 영월 어간으로 흐르겠다.  

동강 물은 흘러흘러 서강을 만나고 남한강을 만나고 북한강을 만나 한강이 되어 서해로 흘러들겠다. 



물 마시는 코끼리로 보인다. 







백운산 정상에서 제장마을로 내려서는 능선은 칼날 능선의 연속이면서 뽀족봉을 여러개 넘는 급경사 내리막길이다. 

다만 두어개의 봉우리에서 급한 오르막을 만나 두어바탕 땀을 쏟아야 한다. 

그 봉우리들은 동강가에 직벽으로 솟은 아스라한 낭떠러지들이다. 

제장마을로 내려서는 마지막 봉우리를 넘고 나니 이제껏 보아왔던 할미꽃 중 가장 고운 개체들이 나와 배웅을 한다. 

안녕히 가시라는 듯..



주로 민박집, 펜션들인 제장마을이 보이고 꽤 넓게 형성된 자갈밭, 외부 세계와 연결하는 다리가 보인다. 



13시 30분 제장마을 강변에 섰다. 

총 5섯시간 하고도 15분이 걸렸네. 

줄기차게 걷기만 했다면 4시간에서 4시간 반가량 걸렸겠다. 

멀리 백운산 정상과 밟고 내려온 능선이 한눈에 잡힌다. 



돌아오는 길 나리소 전망대에서 바라본 백운산. 

음.. 저 산 속에 내가 있었단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