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놀고../먹는이야기
발리의 기억, 발리 도시락과 박소.
발리의 기억, 발리 도시락과 박소.
2014.01.12발리에 갔다 온지도 해를 넘어 벌써 세달이 되어간다. 놀러 갔다온 것도 아니고 씀뻑 다녀온지라 이러저러한 기억들이 고닥새 아스라해진다. 어딜 가나 제때 공급받지 못해 배고픈것 빼고 음식으로 해서 어려움을 겪는 일은 그다지 있어본 적이 없다. 머나먼 열대지방이지만 발리에 가면서도 음식 걱정은 달리 해보지 않았고 실제로 잘 먹고 잘 싸다 왔다. 일부러 이것저것 먹어왔지만 이렇다 하게 기억나는 음식도 없다. 다만 첫날 먹었던 도시락과 마지막날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먹었던 음식이 그중 기억에 남는다. WTO 발리 각료회의에 반대하는 국제 행동의 날 시가행진을 마치고 점심으로 받은 도시락이다. 기름종이에 쌓인 도시락을 펼치는 순간 당혹감이 밀려왔다. "이걸 대체 어쩌라는 거지? ㅎㅎ" 무슨 라면땅 찌끄레기 물에 불..
임실 강진장터 행운집
임실 강진장터 행운집
2013.11.26기계에 의존하지 않고 옛날 방식 그대로 국수를 만든다 했다. 옛 방식으로 국수를 만드는데서 핵심은 '자연건조', 그 과정에 들이는 품이 보통이 아니라 했다. 그 고된 일을 50여 년, 내외간이 합쳐서 백 년을 국수를 뽑아왔다는 임실 백양 국수를 소개하는 글을 보았다. 글의 주제는 '둘이 있는 풍경', 그 세월을 함께 해온 부부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의 시선을 끈 것은 백양 국수만을 고집하여 국수를 끓여낸다는 국숫집. 그 집으로 하여 입소문을 타고 백양 국수가 유명해졌다는데 나는 거꾸로 백양 국수를 통해 국숫집을 알게 되었다. 임실 강진 장터 행운집이 그 집이다. 28년쯤 전에 내가 받았던 전주 병무청에서 신검을 받은 아들놈을 데리고 강진으로 달렸다. 강진은 섬진강 옥정호 아래 순창과 정읍, 임실 접..
예술가 국수
예술가 국수
2013.11.19술을 먹지 않은지 한달이 되었다. 집에 간 지는 또 언제인가? 가물가물하다. 한 보름은 된 모양이다. 지난번 집에 갔을 때 들렀던 홍규형 작업실, 술을 먹지 않는 관계로 자꾸 대화가 단절되고 맨숭맨숭하였다. 갑자기 홍규형이 국수를 말아주겠다고 팔을 걷어붙인다. 홍규형 음식 솜씨는 그가 지닌 예술성 못지 않게 토속적이면서 깊이가 있다. 홍규형 음식을 맛보기 위해서는 열심히 추임새를 넣어줘야 한다. "흐미 냄시 존거~" "아~따 맛나겄네이!" 작업실 앞에 작은 밭고랑을 일구어놓은 홍규형이 이런저런 푸성귀를 따고 뜯어다 상을 차렸다. 나도 내년에는 꼭 텃밭농사 성공해야지 다짐해본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는 단 한번도 텃밭농사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파지, 무수지 다 직접 담갔다 한다. 김치 담그기가 몹시 재..
무교동 곰국시
무교동 곰국시
2013.11.18전국 농민대회 성사를 위한 서울시청 천막농성장, 사람 왕래가 많은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1인 시위를 한다. 바람이 몹시 불고 날이 차다. 몸을 잔뜩 옹송거리고 지나가는 서울시민들의 발걸음이 허둥댄다. 며칠 전 햇볕 좋은 날은 말도 걸고, 응원도 보내주고 하더니 오늘은 다들 제 갈길 가기 바쁘다. 그래도 따뜻한 눈길로 피켓에 적힌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는 사람들을 보며 자리를 지킨다. 대략 40여 분간의 1인 시위를 마치고 찬바람에 얼어버린 속을 덥힐 요량으로 곰국시 집으로 간다. 곰국시는 술 많이 먹은 다음날 속풀이로도 제격일 터이다. 가격이 몹시 비싼 것과 칼국수 가닥 같은 밍밍한 굵은 면발이 다소 아쉬운 것을 제외하고는 딱히 흠잡을 데가 없다. 쇠고기를 우려낸 국물일까? 국물맛이 듬직하고 시원하다. 양 ..
무교동 북엇국집의 그야말로 북엇국
무교동 북엇국집의 그야말로 북엇국
2013.11.15시청 마당에 집이 한채 생겼다. 5만 정도는 너끈히 수용할 수 있는 마당이 몹시 넓은 집.. 11월 22일 전국 농민대회를 본때 있게 성사시키기 위해 전국농민회총연맹이 서울시청 광장에 천막을 설치하고 농성을 시작하였다. 쌀 목표 가격 23만 원,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 쟁취를 위하여! 쌀시장 완전개방 반대와 한중 FTA 저지를 위하여! 후보 시절의 농업 공약을 완전히 파기하여 새빨간 거짓말로 만들어버린 박근혜 독재정권에 맞선 농민들의 힘찬 진군이 시작되었다. 전국 시군 지역 곳곳에서 농민들이 벼를 야적하고 천막을 치고 있다. 서울시청 천막은 오늘로 사흘째, 밤공기는 싸늘하지만 천막은 열기가 훈훈하다. 농성장에서 멀지 않은 곳, 무교동 북엇국 집엘 갔다. 단 하나의 식단, 별도의 수식어가 필요하지 않은 그야..
목포 덕인집 흑산홍어.
목포 덕인집 흑산홍어.
2013.11.02제주에서 오후에 뜨는 배를 타고 목포에 내리면 9시 한 반쯤 되고 11시발 새마을호를 타기에는 뭘 하기에도 어정쩡하게 시간이 남는다. 목포항에서 역 쪽으로 타박타박 걷다 보면 역 바로 못미쳐 흑산홍어를 파는 덕인집이라는 주점이 있다. 그리 멀지 않은 옛날, 배를 타기 직전까지 술을 마셨고 배 안에서도 줄곧 술을 마시면서 왔다. 그렇게 배에서 내려 역으로 가다 취중에 들어가 홍어에 막걸리에 기차가 출발하기 직전까지 마시다가 뛰다시피 하여 간신히 기차에 올라탔었다. 홍규 형이랑 그랬다. 그때 남은 것이라곤 "아따 되게 비싸네" 하는 가격에 대한 부담스런 기억 뿐이었다. 그 후로 또 언젠가 같은 이유로 홀로 그 길을 걷다가 어두운 밤길에 홀로 불을 밝히고 있는 그 집을 발견하였다. 아! 저 집이구나 하는 기억..
수유리 우동집
수유리 우동집
2013.10.24늦은 밤, 아니다 새벽, 그것도 3시경 수유리에 가게 되었다. 살다보니 이런 시각에 수유리에 갈 일도 생기는구나 싶었다. 목적지가 가까와오고 느닷없기는 하나 이유있는 공복감이 밀려올 찰라 맛난 우동집 있다는 말에 귀가 활짝 열린다. '수유리 우동집', 이름 참 간명하고 좋다.여기 맛난집 맞냐 물으니 30년 넘드락 뭐하느라 이제 오느냐고 반문하신다. 우동, 잔치국수 등 밀가루것이 주종을 이루는 가운데 김밥이 있다. 우동집이니 우동을 먹기로 하고 우선 김밥 하나 먹는다. 진짜 '참'기름을 바른 듯..김밥 참 고소하니 맛나다. 이내 우동이 나오고..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 면발을 집어드는 순간 전해오는 면발의 감촉.. "뭐가 다르다"입에 넣어보니 부드러우면서 짤깃한 면발이 그지없이 좋다. 주문을 받은 후에 직접..
을지로 산골면옥 춘천막국수
을지로 산골면옥 춘천막국수
2013.10.20월방학을 서울 부근에서 보내고 집에 내려가는 큰딸을 만났다. 어느 결에 훌쩍 커버린 녀석, 큰놈과 달리 인생의 진로를 결정하는 과정이 전격적이거나 순탄하지 못하고 고민이 많다.하고 싶은 일들은 너무너무 많은데 뭐 이런거.. ㅎㅎ이미 점심시간은 지난 상황, 안국역에서 만나 냉면을 먹기로 하고 탑골공원 뒷편 유진식당을 찾았으나 줄이 늘어서 있다. 줄 서서 기다리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일인지라 포기하고 을지면옥으로..딸래미와 도란도란 얘기하며 걸으니 지루함이 없다. 그러나 굳게 닫힌 문, 일요일엔 영업을 안하나 보다. 멀지 않을 것 같은 우래옥으로 갈까 하다 을지로 4가 길모탱이 막국수집이 생각나 그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 집은 몇년 전 KTX에 비치된 잡지에 나온 소개글을 보고 가본 일이 있다. 그리 나..
무교동 낙지.
무교동 낙지.
2013.10.15뜨거웠던 여름 한복판, 서울역에서 열린 8.15 평화통일대회를 마치고 시가행진을 하던 도중 허기를 견디지 못한 일부 참가자들이 먹을 것을 찾아 을지로 부근 골목으로 스며들었다. 때는 휴가철, 거기에다 휴일인지라 문을 연 식당을 찾기 어려웠다. 어렵사리 식당 하나를 발견하고 들어가니 낙지를 전문으로 다루는 집이었다. "회가 동한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제때 밥을 먹지 않으면 뱃속의 회충이 요동친다는 말이다. 이제는 잊혀져가는 옛날 말이다. 어찌 되었건 간단히 요기나 할 요량으로 들어왔으나 살아 꿈틀대는 낙지를 보니 고픈 배에 더해 술생각까지 그야말로 회가 동한다. 낙지연포탕을 주문하였다. 미나리에 느타리버섯, 새우, 바지락 등으로 구성된 냄비가 끓기 시작하자 산낙지를 투여한다. 아니 이런 비인도적인 처사..
서산 우럭젓국
서산 우럭젓국
2013.10.11늘 술을 끼고 사는지라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해장국에 관심이 많다. 어느 땅에나 술꾼들이 있을 것이고 그런 술꾼들의 속을 풀어주는 그 땅의 해장국이 있을 터이다. 언젠가 테레비에서 스쳐 지나가듯 본 서산 우럭젓국이 늘 머릿속에 떠 다녔다. 서산 간다. 토박이 요리사가 직접 끓여주는우럭젓국 먹으러, 정말로.. 그간 몇차례 날을 잡았다 연기했다 했던 터라 기대가 크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지만 오늘은 구경을 먼저 한다. 간월암에서 만나 안면도 일몰을 보고 숙소에 당도했다. 우럭젓국은 어떻게 끓이는가? 삐득삐득 말린 우럭포가 주재료, 호박, 배추, 고추 등의 부재료를 넣고 끓이는 데 새우젓만으로 간을 한다. 우럭포에 새우젓 간, 그래서 우럭젓국인 모양이다. 우리의 요리사는 반드시 쌀뜨물을 받아서 끓여야 비린내..
우정회관 게장백반
우정회관 게장백반
2013.09.30늘 술을 입에 달고 산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다. 양재동 aT센터 앞 고추 투쟁 마치고 한 잔 걸친 것이 어중간하여 저녁을 따로 먹지 않았다. 이 시각 술기운이 가시고 허기가 찾아온다. 어쩌란 말인가? 일찍 눈을 감았어야 하는데 때를 놓쳤다. 눈요기라도 해야겄다. 고창 바닷가 심원 우정회관 게장백반. 만돌 갯벌에 새 보러 갔다 허탕치고 돌아오는 길이었을 것이다. 게장백반으로는 나름 이름 있는 집이다. 맛있다. 밴댕이젓, 요 거이 또 일품이다. 게장에 하나, 밴댕이젓에 하나, 밥 두 공기 뚝딱. 손님이 늘 끊이지 않는 집, 겨울에는 자연산 굴요리가 좋다. 다만.. 너무 비싸다. 게장백반 17,000원, 거기다 소주 한 병에 공깃밥 추가 21,000원, 내 돈 내고 먹기 쉽지 않다. 밥값 대신 내 줄 동무 ..
달마가든 산채비빔밥
달마가든 산채비빔밥
2013.09.27달마산 입구, 미황사 바로 아래 단 하나의 식당 달마가든이 있다. 달마산 아래 당도하니 마침 점심때가 되었다. 산채비빔밥을 먹는다. 커다란 양푼에 돌미나리를 깔아준다. 이것저것 나물을 넣고 고추장 넣고 비벼먹는다. 먹다보니 직접 담궜다는 막걸리가 땡긴다. 점심밥 먹으면서 절반, 산 타고 내려와 절반을 마저 먹는다. 맛이 좋다. 명절 다음날이라 손님이 없다. 남도 사투리를 원단으로 쓰는 주인 아주머니와 도란도란 얘기 주고받는 맛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