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놀고../먹는이야기
황태호박국
황태호박국
2019.09.08"아이 후타리 호박 좀 따다 히 먹으란 말이.." 시시때때로 실가린나 뭇나 후타리 너머로 챙겨주시는 웃집 아짐 애원하다시피 신신당부한다. 차마 외면할 수 없어 태풍을 무릅쓰고 어덕을 기어올라 하나 따왔다. 무엇을 해 먹을꼬 하니.. 뚝배기에 물 받아 멸치, 마른 새우, 황태 넣고 뚝배기 달구다가 애호박 나박나박 썰어 넣고 팔팔 끓인다. 다진 마늘 양껏, 간은 오로지 곰삭은 새우젓으로.. 양파 반쪽 썰어 넣고 다 끓였다 싶을 때 청양고추, 대파 투척하고 마무리. 황태 호박국 되시겄다. 시원하고 좋다. 애호박찌개는 저리 가라 하네.
베트남 메밀국수
베트남 메밀국수
2019.07.09여름은 국수의 계절, 요건 무슨 국수일까? 메밀 생면에 베트남 쌀국수 국물, 청양고추에 고추냉이. 메밀 생면을 팔더라. 그런데 딸려오는 소바 국물이 형편없다. 직접 제조하자니 번거롭고 실력이 안되고.. 베트남 쌀국수도 팔더라. 딸려오는 소스가 제법 훌륭하다. 그런데 쌀국수는 삶는 과정이 번거로워.. 해서 이 국수가 만들어졌다. 라면보다 빨리 삶아지는 메밀 생면, 고수 향 은은한 베트남 국물이 궁합이 잘 맞는다. 맛나다. 그리고 간편하다. 그래서 좋다.
꼴뚜기볶음
꼴뚜기볶음
2019.06.04나는 꼴뚜기를 매우 좋아한다. 어린 시절 멸치에 섞인 꼴뚜기를 골라먹자고 상자 채로 엎어놓고 뒤지기 일쑤였다. 그러면서도 정작 꼴뚜기를 한 번도 양껏 먹어보지 못했다. 어머니는 꼬록젓은 상에 자주 올렸으나 단 한 번도 꼴뚜기 반찬을 만들어준 적이 없다. 망둥이 따라 뛰는 꼴뚜기처럼 살지 말라는 가르치심이었을까? 하지만 어머니는 친구들 도시락 반찬 속 꼴뚜기를 내 얼마나 탐했던 지 모르셨을 것이다. 엊그제 장 보러 갔다 눈에 띈 꼴뚜기를 한 봉다리 사 왔다. 어떻게 해 먹는 건가 살펴보니 물에 불려 깨끗이 한 후 양념장 치고 볶아 먹으면 되겠더라. 하라는 대로 했다. 다만 번거로운 공정을 보다 단순화했다. 불린 꼴뚜기 건져 물기 대충 짜내고 기름 두르고 다진 마늘 넣어 볶다가 간장 알맞게 치고 다진 고추,..
황태국에 법성토종
황태국에 법성토종
2019.05.21황탯국을 끓인다. 멸치, 황태, 양송이, 마늘, 계란, 양파, 청양고추, 대파.. 순서대로 적당 시간씩 팔팔 끓인다. 나는 모든 요리에 마늘, 양파, 청양고추, 대파를 넣는다. 오래된 새우젓, 고개미젓 혹은 세하젓, 아닐 수도 있고.. 얼마나 오래된 건지 알 수 없다. 이걸로 간을 하니 국물 맛이 예술이 되네. 소금, 간장으로 간한 것과는 다른 칼칼하고 씨원한 맛을 낸다. 요것이 핵심이다. 스무 살 먹어가는 오래된 법성토종 반주 삼아 밥 한 그릇 뚝딱.. 법성토종은 오래돼서인지 독특한 향이 많이 순화되었고 목 넘김이 부드럽다. 부드럽게 넘어가 뱃속 깊은 곳에서 불꽃으로 타올라 뱃구레를 후끈하게 달군다. 좋아요, 아주 좋아요..
페루 산삼 마카 얼지
페루 산삼 마카 얼지
2018.11.18남미(페루)의 산삼이라 일컬어지는 마카, 인터넷 세상에 그 효능에 대한 정보가 넘쳐난다. 유난히 강조하는 것은 남성 성기능에 관한 것이지만 나는 잘 알 수 없다. 나는 다만 고추냉이 닮은 알싸한 매운맛을 좋아할 따름이다. 매운맛에 광적인 나는 음식을 매운 것과 안 매운 것 두 가지로 분류한다. 무쳐먹을 요량으로 공음 마카 농사꾼한테 가서 어린 마카를 얻어왔다. 이 농사꾼은 고집이 있어 농약도 안 치고.. 연장 쓸 것도 없이 손톱으로 훑어 뿌리를 다듬고 전잎 뜯어냈다. 씻으면서 통째로 우걱우걱 몇 뿌리 씹어 먹는다. 매움한 맛이 좋다. 많이 먹으면 설사한다는데 그런 거 한 번 해봤으면 쓰겄다. 얼지라 할 것도 없다. 고추장, 간장, 고춧가루, 다진 마늘, 들지름을 제각각 쓰임새에 걸맞은 양만큼 넣고 잘 버..
그야말로, 이름 그대로 실가리 된장국
그야말로, 이름 그대로 실가리 된장국
2018.11.13웃집 아짐 후타리 너머로 애타게 부르더니 막 건져낸 실가리 한 보따리, 된장 한 양판을 건넨다. 된장은 두고 먹는다 치고 실가리는 언제 다 먹는다냐.. 일단 한 댓새는 실가리 된장국으로 밀고 나가야겄다. 실가리가 만들어지기까지 어떤 공력이 들어가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허나 실가리 된장국은 무척 간단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실가리 잘게 썰어 한 뚝배기 빡빡하게 넣고, 된장 아까라 말고 한 숟갈 듬뿍. 오로지 된장만으로 간을 맞춘다. 다진 마늘 적당히, 청양고추 양껏 투여. 끝. 무슨 육수 따로 낼 것 없이, 다른 양념 없이 이렇게만 해도 충분히 맛나다. 본연의 맛에 충실한 그야말로, 이름 그대로 실가리 된장국. 한그럭 뚝딱, 남김없이..
가을 붕어찜
가을 붕어찜
2018.09.11여름 끝자락, 아니 인자 가을이다. 하늘로만 오르던 능소화 더 이상 오를 곳 없고, 저녁노을은 붉게도 탄다. 어젯밤 꿈에 나오신 어머니, 부석짝 허적이며 군불 때셨다. 완연한 가을이다. 농민 총회 준비하고 치르느라 고생한 영태가 홀연히 장비 챙겨 밤낚시를 다녀왔다. 4짜 넘는 것들 다 떨키고 33짜리 겨우 하나 건졌다고.. 어머니 해드리락 해도 기필 나를 줬다. 손질하면서 꼬랑지 쳐부렀더니 영 볼품없다. 꼬랑지는 남겨둬야제 못쓰겄다. 삐친 듯 보이던 붕어가 손질해 놓으니 슬퍼 보인다. 둠벙 속 물고기 건져 올리는 데는 귀신인 동네 형님, 물고기 지지는 데도 타인의 추종을 불허한다. 동네 사람들은 이 냥반 돌아가시면 둠벙 속 물고기들 잔치할 거라고 입을 모은다. - 형님 붕어 한 마리 얻어왔는디요. - 먹..
파프리카 볶음
파프리카 볶음
2018.07.20파프리카를 왈칵 좋아하지 않는다. 맵지 않은 탓이다. 공으로 생겼으니 먹는다. 분명히 복숭아로 알고 받아왔는데 둔갑했다. 덕분에 냉장고 속에서 늙어가던 식재료들이 여럿 해방되었다. 파프리카 세개, 멧돼지고기 약간, 감자, 양파, 대파가 들어갔다. 멧돼지고기 누린내는 법성 토종소주로 말끔히 잡았다. 알콜이 누린내를 죄댜 붙들고 날아가버리는 모양이다. 오래되어 다소 눅은내 나는 들기름을 둘렀지만 나쁘지 않다. 간은 굵은소금과 간장으로 맞촸다. 청양고추가 없는 것이 옥의 티, 매운 파프리카가 있다면 겁나 사랑할텐데..얼마만의 집밥인지 헤아릴 수 없다.
메밀국죽
메밀국죽
2018.05.14밥 묵을란디 쌀이 떨어졌다. 기함할 지경인데..하지만 나에겐 메밀쌀이 있다.작년 이맘때쯤이었던지, 재작년인가?정선에 갈 때마다 메밀국죽 노래를 불렀더니 정선 사람 메밀쌀을 한봉다리 싸줬더랬다.좌우튼, 기억을 더듬어 맛을 재현해보는디.. 잘 될랑가 모르겄다. 먹어본 지 오래다. 멜치 넣고 물 끓이다가 메밀쌀 넣고 된장 풀고 고추장 풀고..고추장은 시늉만 했을 뿐인데 때깔을 장악해부렀다. 팔팔 끓이다가 청양꼬치 댓개 쓸어넣고, 씹는 맛 있으라고 황태 째까 찢어넣고 조미료 대신 김치 넣고 대파 쓸어넣는다. 또 팔팔 끓이는데 아뿔싸 물이 쫄아든다. 이러다 죽 되겄다. 명색이 메밀국죽인데..국과 죽의 경계에서 오묘한 줄타기를 한다. 퍼노니 그럴싸한데 짐이 안나서 차가워보인다.사진이라는게.. 실상은 뜨겁다. 싸래기..
민물새우탕
민물새우탕
2017.10.01- 새비 지져묵을래? - 헐지 알아야제라.. - 무시 늫고 고구마순, 실가리 늫고 꼬치장 두어숟가락 풀어서 푹 지지문 되야 - 글먼 주쇼 - 무시에 맛이 푹 백이야여..아랫집 형님 봉다리 하나 건네준다. 민물새비, 토하다. - 어서 이로고 잡으겼소? - 형제간들 올거인디 줄 것도 없고.. 잡니라고 X 나왔다말은 들었으나 안해본거라 긴장된다. 그나 꼬치장 빼고는 아무것도 없으니 .. 흥덕에 나갔으나 무시 말고는 고구마순도, 실가리도 없다. 물 팔팔 끓여 꼬칫가리 한숟갈, 꼬치장 한숟갈, 다진마늘 듬뿍.. 그라고 무시 나박나박 쓸어 넣고 마지막으로 새비를 넣는다. 들지름으로 회금내를 잡아야 한다는 인터넷 조언에 따라 들지름 약간 친다. 간은 굵은 소금으로.. 끓이다가 양파 좀 쓸어 넣었다. 무시에 맛이 푹 ..
된장찌개
된장찌개
2017.07.17감자 부자 되얐다. 젊은 상농사꾼들이 생산한 강원도 감자, 전라도 감자.. 강원도 감자는 그냥 감자. 전라도 감자는 적색 감자.. 아니고 자색 감자.. 당분간 감자 먹어치우는 식생활에 집중하지 않으면 한 절반 썩후기 십상이겠다. 밑반잔에 의존해 대충 차려먹던 점심상에 된장찌개를 올린다. 된장찌개는 아무렇게나 끓여도 맛난 세상 손쉬운 음식인데 식당에서 내놓는 맛없는 된장찌개를 마주할 때면 이것도 재주다 싶어 욕이 절로 나온다. 감자, 돼지고기 혹은 호박 등 주재료가 정해지면 멸치로 국물 내 된장 풀고 마늘, 양파, 고추, 대파를 적절히 투여하여 자신의 취향과 입맛에 맞게 끓이면 되는 것을.. 세상 일이 다 그렇겠지만 요리라는 것도 줏대가 있어야 제대로 된다. 내가 무슨 음식을 만들 것인지, 구현하고자 하는..
느타리버섯
느타리버섯
2016.10.28좋은 것은 아니라면서 안겨준 느타리버섯 한보따리. 과연 이것을 제때 먹을 수 있을 것인가 크게 걱정하면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먹어야지 먹어야지..' 염불을 외두다시피 했다. 오랜만에 먹는 집밥, 마침 나가 있는 애들도 집에 왔다. 우리 애들은 아버지의 요리에 대한 신뢰가 깊다. 일단 데쳐내서 너무 큰 것들만 먹기 좋게 찢고 물기를 꼭 짜준다. 느타리버섯을 맛나게 먹기 위한 첫번째 공정, 어떻게 해먹건 이렇게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고추장버섯찌개첫번째 요리는 매움한 버섯찌개로.. 고추장버섯찌개, 이름은 내가 붙였다. 애호박찌개 끓이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 냉동실 속 돼지고기 한덤배기 썰어 고추장에 버무려가며 볶아대다가 버섯 넣고 좀 더 볶다가 멸치 다싯물 붓고 끓이면서 파, 마늘, 양파, 청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