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꾼 세상
홍줄나비
홍줄나비
2022.07.24이 나비를 보겠다고 먼 길 달리기 네 번째, 보겠다고 맘먹은 지 6년. 잣나무 숲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시간은 대개 오전 10시에서 11시 사이라 했다. 장마통 고르지 않은 날씨 오늘은 다행히 햇살이 맑고 하늘은 푸르다. 먼저 와 사방을 순찰하며 나비를 기다리던 이 바삐 손짓하며 나를 부른다. 여기는 오대산, 드디어 본다. 열 시 반 무렵이었다. 절 기둥에 내려앉은 단 한 마리 홍줄나비, 날개를 열었다 닫았다 무척이나 여유롭다. "나 오늘 한가해요". 햇빛을 쬐는 걸까? 사진기에 담기는 걸 즐기기라도 하는 양 초면에 허둥대는 나를 도리어 다독인다. 날아갈세라, 일단 거리 유지하고 '나도 봤다'는 증거를 남긴다. 살금살금 거리를 좁혀가는데 이 녀석 사람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제 대놓고 활개 치며 사진기를 ..
집강소, 조선의 새 하늘을 열다.
집강소, 조선의 새 하늘을 열다.
2022.07.18폐정개혁 12개 조 △도인과 정부는 묵은 감정을 버리고 서정에 협력할 것 △탐관오리의 죄목을 조사하여 하나하나 엄징할 것 △횡포한 부호들을 엄징할 것 △불량한 유림과 양반들을 징벌할 것 △노비문서는 불태울 것 △칠반천인의 대우를 개선하고 백정의 평양립을 벗길 것 △청춘 과부의 개가를 허용할 것 △무명잡세를 폐지할 것 △지벌을 타파하고 인재 위주로 관리를 채용할 것 △외적과 내통한 자는 엄징할 것 △공사채를 막론하고 지나간 것은 모두 무효로 할 것 △토지는 평균으로 분작하게 할 것 전주화약 이후 전라도 각 고을에 집강소가 설치되기 시작했다. 전주성에서 물러났으되 무장을 풀지 않은 농민군이 주체가 되어 폐정을 개혁하는 사업에 착수한 것이다. 집강소의 폐정개혁 12개 조항은 백성들에게 천지가 개벽하는 것과 같..
지리산팔랑나비
지리산팔랑나비
2022.07.16왜 지리산팔랑나비일까? 1936년 이 나비를 처음 기록한 석주명 선생이 지리산 표본을 사용했으며, 그의 나비 이름 유래기에서 "조선에서는 필자가 지리산에서 몇 나리 잡은 것밖에 없는 형편으로 그 산지를 따서 명명했다"라고 밝히고 있다. 허나 지리산팔랑나비는 지리산에만 있지 않다. 내륙을 중심으로 남한 각지에 국지적으로 분포한다.. 하여 강원도 산골짝에서도 만났던 것이다. 나비란 것이 때를 잘 맞추면 생각보다 쉬 만날 수 있게 되더라. 이름만큼이나 위풍당당하다. 내 이래 보여도 지리산이여!! 산지와 주변의 볕이 잘 드는 풀밭에 산다. 풀밭 사이를 날아다니며 엉겅퀴, 꿀풀, 큰까치수영 등의 꽃에서 꿀을 빤다. 수컷은 물기 있는 땅바닥에 잘 앉으며, 나무 끝에 앉아 텃세를 부린다. 암컷은 먹이식물(참억새, 큰..
바둑돌부전나비
바둑돌부전나비
2022.07.11얼마 만인가? 이 녀석을 보는 것은.. 3년 만이네,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군. 녀석을 처음 본 것은 8년 전이었다. 집에서 예초기 돌리다 녀석을 만난 후 신상털이에 나섰다. 남부지방 신우대에 기생하는 일본납작진딧물을 먹이 삼아 생활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뒷낭깥 신우대밭에 가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녀석들이 나풀나풀 날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녀석은 육식성 나비다. 일본납작진딧물과는 기생이나 공생 이런 것이 아니고 먹고 먹히는 관계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댓잎에 앉아 있는 녀석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자못 맹수의 기품이 느껴진다. 몸집에 비해 두툼하고 튼실한 네 다리, 금방이라도 내달릴 듯한 기세.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식사 중이다. 그러니 댓잎에 붙어있는 것들은 일본납작진딧물인 게다. 애벌레는 이 진딧물을..
번개오색나비
번개오색나비
2022.07.04지리산이 만복대, 정령치 지나 고리봉에 이르면 백두대간은 한껏 몸을 낮춰 사람 사는 마을로 내려간다. 반면 대간보다 훨씬 굵직하게 산줄기 하나 뻗어가니 바래봉으로 나가는 지리산 서북능선이다. 몸을 낮췄다 하나 대간은 대간, 대간과 서북능선이 품은 고원지대에 고을이 있으니 운봉이다. 운봉 산덕 마을에서 바래봉, 팔랑치 등으로 오를 수 있는 임도가 있다. 산덕 임도라 한다. 그 길에서 만났다. 국내에는 지리산 이북의 동북부 지역에 국지적으로 분포한다. 수컷은 습기 있는 땅바닥과 오물에 잘 앉으며, 오후에는 산 능선에서 활발하게 점유 행동을 한다. 암수 모두 참나무 등의 수액에 모여 영양을 취한다. 먹이식물은 호랑버들, 버드나무, 애벌레로 월동한다. 6월 하순에서 8월 연 1회 발생한다. 나와의 거리를 좁혀오..
모시나비
모시나비
2022.07.02하늘하늘 한들거리는 모시옷이 양반들의 것이었다면 성글성글 투박한 삼베옷은 상민들의 것이었을까? 모시등그리, 쇠코잠뱅이 하는 말들을 듣고는 자랐으나 잘 구분하지 못한다. 어릴 적 어머니가 지어주셨던 것은 주로 삼베옷이었다. 삼베 빤쓰, 삼베 이불.. 한여름밤 무더위를 가셔주던 삼베의 거친 감촉과 어머니의 부채질을 잊을 수는 없겠다. 다 커서 장가 든 후에 모시로 삼은 옷을 입기도 했는데 그거이 모시등그리인 게다. 찾아보면 지금도 어느 구석엔가 있을 법도 하다. 모시나비를 보는 순간 그 옷이 생각났던 것이다. 바람이 통하지는 않겠으나 반나마 투명한 날개와 가지런한 시맥 하며 영락 없는 장인의 솜씨다. 낮술에 취해 몽롱하던 차에 허실 삼아 찾아들어간 숲 속 묵은 밭에서 너를 만났다. 다소곳하고 얌전하며 사람을..
각시멧노랑나비
각시멧노랑나비
2022.07.02멧노랑나비일까? 각시멧노랑나비일까? 매우 유사한 두 나비의 결정적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이 녀석은 각시멧노랑나비일 것으로 판단한다. 아닐 수도 있겠는데.. 뒷날개 복판 검붉은 점의 크기가 다르다 하는데 나로서는 판단할 수 없는 영역이다. 아무래도 뒷날개 아랫부분 굴곡의 차이(각시멧노랑나비는 굴곡이 두 번)로 판단하는 것이 가장 결정적이지 않겠는가 싶다. 멧노랑나비를 언제고 한 번 봐애 확연히 구분할 수 있는 눈이 생길 수 읶겠다. 그 날을 고대하며.. 개망초에 앉았던 녀석 숲 속 그늘로 숨어 들어간다. 때마침 해가 나오고.. 멧노랑나비보다 2주 정도 빨리 나오고 한 달 정도 활동하다가 여름잠을 자며, 8월 말쯤 다시 활동하기 시작하여 어른 벌레로 겨울을 난다. 겨울을 나고 너덜너덜해진 날개로 힘 없이 ..
담색긴꼬리부전나비
담색긴꼬리부전나비
2022.06.27이 녀석을 다시 보는 건 7년 만이다. 그 무렵 그 근방에서 오늘도 단 한 마리.. 그래도 오늘은 연장이 좋아서 아쉽지 않게 사진을 남겼다. 그리 귀하게 보이는 나비는 아니라는데 내 눈에는 잘 띄지 않았던 모양이다. 녀석의 활동 시기와 나의 활동 시기가 잘 맞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6~8월 오후 3시 무렵부터 해 질 녘까지 높은 나무 위를 활발히 날아다닌다고.. 식수는 떡갈나무, 갈참나무. 분포 지도상으로는 방장산에 없는 나비이기도 하다. 멀찌감치 앉았는데 새 잡는 사진기를 들이대니 잘 잡힌다. 밀도 높은 정밀묘사는 불가능하지만 멀리 있는 작은 녀석을 잘도 잡아낸다. 새도 잡고 나비도 잡으니 참 좋다. 바람 타는 나뭇잎, 한 번 앉은자리에서 딸싹도 하지 않았으나 다시 돌아오면서 보니 흔적도 없더라. 생..
내 청춘의 비망록
내 청춘의 비망록
2022.06.21바람 부는 보리밭, 내 인생에 이런 출렁거림이 언제 있었던가 그해 6월, 전주성을 점령한 농민군과 정부군 사이에 휴전이 성립됐다. 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한 지 열흘 만이다. 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하자 조선은 격랑에 휩싸였다. 조정은 청나라에 구원을 요청했고 이는 청일 양군의 조선 출병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곧바로 침략군, 점령군으로서의 본성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외국 군대를 끌어들여 자기 나라 백성을 학살케 한 치욕의 역사가 이로부터 비롯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정은 당황했다. 농민군 또한 폐정 개혁안을 제시하고 이를 조정이 받아들인다면 해산하겠다는 협상안을 제시했다. 초토사 홍계훈이 이를 수락함으로서 이른바 ‘전주화약’이 체결됐다. 휴전이 성립되기까지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으며 농민군과 조정의 ..
봄처녀나비
봄처녀나비
2022.06.19봄처녀나비를 찾아 나선 날은 여름의 초입이었다. '봄처녀 제 오시네~' 하는 노래 속 봄처녀가 이 나비를 의인화한 것이라는 말에 하루 점드락 그 노래를 흥얼거렸더랬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근거 없는 말이었다. 인터넷상의 정보는 세심한 검토를 필요로 한다. 무심코 차용했다간 공범이 되기 십상이다. 근거 없는 말들이 사실처럼 굳어지는.. 예상했던 장소에 나비는 없었다. 허나 허탕은 아니었으니 돌아 나오는 길, 한 군데만 더 살펴보자 했던 그곳에서 봄처녀들을 영접했던 것이다. 봄처녀들은 나무 빽빽하지 않은 초지와 키 작은 관목 어우러진 야트막한 산 능선에서 나분 나분 날아다니고 있었다. 잘 앉지 않는다.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눈으로 추적하며 조심스레 접근하는 인내가 필요하다. 회양목이 많이 자생하고 있다. ..
선운사에서..
선운사에서..
2022.06.16얼마 만인가? 사진기 챙겨 들고 숲을 살피며 할랑할랑 걷는다. 선운사 입구, 도솔천 너머 숲이 싱그럽고 울창하다.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붉은배새매, 매번 생각한다. 붉은코새매로 이름을 바꽈야 하지 않을까? 안창 은밀한 곳에 숨어 있는 녀석, 붉은배새매 유조. 노란색 눈테가 없는 것이 결정적 증거가 된다. 앞자리 앉은 성조와 무관하지 않은 듯.. 어치에게 발각돼 이리저리 쫓겨 다닌다. 어미새 도와주지 않더라. 너 알아서 하라는 건지, 내놓은 자식이라는 건지.. 뱁새, 늘 유쾌한 녀석들.. 다람쥐는 늘 뭔가를 오물거리고.. 큰줄흰나비 암컷, 배를 추켜세웠다. 나는 이미 수태한 몸이라는 짝짓기 거부 행동. 아랑곳하지 않고 수컷 두 마리 날아든다. 교접을 시도하는 수컷, 이런 경우 수컷이 포기하고 물러날 수밖..
5월, 그날이 다시 오면..
5월, 그날이 다시 오면..
2022.05.29돌아보면 우리 역사의 어느 한순간 격렬하거나 숭고하지 않은 때가 없다. 격랑의 근현대사에서 5월은 특히 그러하다. 80년 5월 광주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가장 직접적이고도 전투적인 투쟁의 자양분이 되고 있다. 세월을 좀 더 거슬러 동학농민혁명의 연대기를 들여다보자. 1만여 농민군이 집결한 백산 대회, 황토현 전투와 황룡강 전투, 전주성 점령에 이르는 승리와 환희의 순간들 모두가 5월 한 달 동안에 있은 일이다. 2018년 정부는 우여곡절 끝에 5월 11일을 동학농민혁명 기념일로 정했다. 이날은 농민군의 빛나는 첫 승리인 황토현 전승일이다. 당시 조선의 5월은 어땠을까? 6월 말, 하지 전후를 모내기 적기로 삼던 때였다. 120여 년이 흐르는 동안 모내기 시기가 한 달여 앞당겨졌다. 30여 년 전,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