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꾼 세상
가지너물무침
가지너물무침
2022.10.09가지를 부쳐준다더니 진짜로 보냈다. 어찌 알아낸 주소인지 남의 집 처마 밑에서 사흘 밤을 자고서야 내 손에 들어왔다. 제법 묵근해서 이걸 언제 다 먹지 했는데 가지 말고도 책 두 권, 풋고추, 애호박까지.. 이건 종합 선물 꾸러미, 복 받을지어다. 가지를 이리 가차이에서 보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두어 개 날로 삼켜버리고 옛 기억 더듬어 가지너물을 무쳐본다는디.. 적당한 크기로 잘라 찜솥에 넣고 10여 분 짐이 폭폭 들게 쪄 식어라 하고 둔다. 손으로 쪽쪽 찢어 물켜지지 않게 물기를 살째기 짠다. 찬지름 아까라 말고 담뿍 치고 조선간장, 마늘, 고춧가루, 청양고추, 깨소금 넣고 조물조물 무친다. 뒀다 먹을 놈 따로 담아두고.. 한 상 차려 맛나게 먹는다. 세상 간편하고 맛난 가지너물무침이다. 저녁은 애..
허리디스크 극복기
허리디스크 극복기
2022.10.04쓰다 만 글을 발견했다. 세월은 참으로 빨라 벌써 5년 묵었다. 그해 겨울 나는 갑자기 찾아온 허리디스크로 하여 무지하게 고생했다. 하지만 대략 3개월 만에 완벽하게 나았는데 그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려다 작파하고 말았던 것이다. 지난해(2016년) 12월 겨울 채비를 미처 해놓지 못해 며칠간 땔나무를 했다. 다소간의 도끼질, 사흘간의 톱질 끝에 가벼운 감기가 왔으나 사나흘 만에 나갔다. 감기쯤이야.. 그런데 진짜가 남아 있었다. 어느 순간 일어나 걸을라 치면 다리가 좀 당긴다 싶었다. 12월 21일이었다. 하지만 통증은 가벼웠고 그러다 말겠지 했다. 이튿날 아침 아무 생각 없이 일어나 걷다 격렬한 다리 통증에 주저앉고 말았다. 왼쪽 엉벅지를 무딘 송곳으로 찌르는 듯했고 종아리 바깥쪽으로는 녹슨 칼로 후벼..
바람 앞에 서다.
바람 앞에 서다.
2022.10.04청일전쟁 발발 후 조선 민중의 반일 항쟁은 마른풀에 불이 붓 듯 전국 각지로 확산되었다. 공주와 이인, 보은에서 무장한 농민군이 출현하고 공주 부근에 집결한 농민군 만여 명이 충청 감영군과 대치하였다. 천안에서는 농민들이 일본인을 처단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영남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북상하는 일본군 병참부에 대한 습격과 서울 부산을 연결하는 통신선을 절단하는 일이 거의 매일같이 전개되고 있었다. 상주, 안동, 김천, 예천 등지에서 농민군들의 움직임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이 밖에 영동 지역에서도 농민군들이 출현했고, 호서와 가까운 근기 지역(죽산, 안성 등)에서도 한성을 위협할 정도가 되었다. 멀리 해서 지역과 청일 간 전투가 벌어진 평양 인근에서도 항일 투쟁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갔다. 이처럼 일..
선운사 고라당
선운사 고라당
2022.10.02나는 상당히 무던하고 둔감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러함에도 나흘간 지역을 돌며 논을 갈아엎은 후과는 상당했다. 고상하게 말하자면 정신적 피로라고나 할까? 오늘은 토요일, 선운사 고라당으로 간다. 생각하기는 이슬이 깨기 전에 돌아오려 했으나 꽤 긴 산행이 되고 말았으니, 최근 몸이 급격히 가벼워진 탓이다. 그런데 선운산은 어디에 있는 걸까? 선운사에 선운산은 없다. 선운사 일주문에는 '도솔산 선운사'라 쓰여 있으나 도솔산도 없다. 선운사 중들이나 그리 불렀던 모양이다. 최근 선운사 뒤 쪽 수리봉을 선운산이라 이름 짓고 그리 부르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이 또한 일반적이지 않다. 선운산은 선운사를 에워싸고 있는 주릉에 망라된 봉우리와 그 골짜기들을 통칭한다 보면 되겠다. 하여 고창 사람들은 '선운사 꼬랑' 혹은..
애기무시 얼지
애기무시 얼지
2022.09.29애기무시 한 보따리가 내게로 왔다. 영태가 돈 좀 만져볼 요량으로 숨었단디, 좌우튼.. 애기무시는 '어린 무', 아삭한 것이 생으로 막 집어먹어도 맛나다. 쌈으로 혹은 고추장 넣고 쓱쓱 밥 비벼먹어도 되겄고.. 그래도 끕이 있제, 홀애비 3년에 얼지 정도는 버물러야제~ 암만! 애기무시 한 주먹 물에 헹궈 다진 마늘, 조선간장, 고춧가루, 깨소금, 대파, 참기름.. 그냥 먹기는 맛이 째까 거시기한 비트 한 조각 썰어 넣고, 오미자청 적당량. 각각의 양념이야 입맛대로 양을 조절하면 되겠는데 홀애비 3년에 손맛은 언감생심, 손에 묻어날 양념조차 아까 젓가락으로 뙤작뙤작.. 이쁘게 접시에 담아 한 상 뒀다 먹을까 했으나 마저 다 묵어부렀네. 얼지는 얼른 묵어부러야제~ 암만! 거 참 맛나네. 어리다고 히피 보지 말자
지리산에 안기다.
지리산에 안기다.
2022.09.22지난 8월 뱀사골을 오르다 갈빗대가 부러졌다. 보름 만에 퇴원하고 다시 보름, 한 달이 지났다. 나는 다시 지리산으로 달린다.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불쑥 반야봉이 나타났다. 산 밖에서 반야봉을 보는 건 아마도 처음이다. 반야봉 너머 남쪽 하늘이 별스럽다. 멀리 일본으로 갔다는 태풍의 영향인 듯.. 빗점골, 이현상 사령관 비트를 찾아 오르는 사람들.. 지리산에 안긴다. 이현상 사령관(1905. 9.27~1953.9.17) 69주기, 제상이 차려지고 추모곡, 추모사, 헌시.. 조촐한 추모제가 거행되었다. 인근에 잠들어 계신 또 한 분의 전사, 남부군 81사단 문화 지도원 최순희(1924.2.10-2015.11.21). 그이에게도 추모의 예를 올리고.. 지리산哭 너덜겅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산중 오락회, 그리고..
뾰족부전나비
뾰족부전나비
2022.09.16선운사 절 마당, 나비 한 마리 훌쩍 날아 처마 끝에 앉았다. 뾰족부전나비, 부전나비 치고는 좀 크다. 절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이 나비는 과거 미접으로 분류되었으나 이제 한반도에 정착하여 산다. 나는 이 나비를 위도에서 처음 보고 광주 지산동에서 두 번째, 그리고 이곳저곳에서 이따금.. 하지만 오늘처럼 한 곳에서 여러 마리를 본 적은 없다. 기후 변화의 뚜렷한 징표, 이 나비는 환경부에서 기후변화 지표종으로 삼아 서식분포를 조사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이 나비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919년 전남 광주에서였다 한다. 이후 오랫동안 관찰 기록이 없다가 2006년부터 거제도를 중심으로 관찰 지역이 확대되고 있다고.. 이 녀석은 수컷이다. 암컷은 청회색을 띠고 있다는데 그렇다면 나는 지금껏 수컷만을 ..
구레나룻제비갈매기 2
구레나룻제비갈매기 2
2022.09.09구레나룻제비갈매기를 흰죽지제비갈매기로 잘못 알아봤다. 유사하게 생긴 녀석들이니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세심하게 들여다보지 않고 대강 훑어보고 지레짐작해버리는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되겠다. 하여 자세히 들여다보고 뜯어본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겨울깃) 머리는 흰색이며 정수리 뒤쪽으로 검은 줄무늬(흰색 바탕의 검은 무늬)가 뚜렷하다. 흰죽지제비갈매기보다 뚜렷하고 뒷머리까지 이어진다. 꼬리는 짧고 가운데가 약간 오목하다. 눈 뒤쪽으로 큰 검은색 반점이 있다. 겨울깃으로 깃털 갈이 중인 개체는 몸 아랫면에 검은색이 남아 있다. 날개와 등은 거의 같은 색으로 보인다. 어린 새는 일부 날개덮깃과 셋째날개깃에 검은 반점이 있으며 깃 끝에 엷은 황갈색 무늬가 있다. 날 때 꼬리 끝에 가늘고 어두운 ..
구레나룻제비갈매기
구레나룻제비갈매기
2022.09.09동림지 뚝방을 걷는다. 대략 1km, 뚝방길 걷기에는 더없이 좋을 때다. 태풍 힌남노 조용히 지나가 들판은 무사하다. 홀연 갈매기 한 무리 나를 스치고 날아간다. 대략 20여 마리, 자유분방하고 활기찬 날갯짓이 황홀하다. 빠른 걸음으로 차로 돌아가 사진기를 챙긴다. 갈빗대가 다 낫지 않아 자세가 나올까 염려했으나 큰 지장은 없다. 얼마 만인가? 사진기가 낯설다. 앞에 어떤 수식어가 붙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제비갈매기다. 녀석들은 사라졌다 갑자기 나타나고 또 홀연히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가만히 살펴보니 그 넓은 저수지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빙빙 돌고 있었다. 녀석들을 잘 보기 위해서는 약간의 인내가 필요하겠다. 도감을 뒤져보니 '흰죽지제비갈매기'라고 생각했으나 전문가에게 의뢰하니 '구레나룻제비갈매기'란다. ..
변화무쌍 가을 하늘
변화무쌍 가을 하늘
2022.09.03병원 생활 2주째, 나이롱이 되고도 한 주가 지났다. 지나고 나니 쏜살같다. 병실, 병동, 병원.. 활동 범위를 제아무리 넓힌다 한들 병원 울타리, 하루 2만보 이상을 걷고 또 걷지만 다람쥐 쳇바퀴.. 그럴수록 눈길은 더 멀리, 머얼리 산과 하늘에 가 닿는다. 요즘 하늘 변화무쌍하여 보는 재미가 있다. 백두대간 너머에서 해 올라오고.. 교룡산 너머로 해 떨어진다. 꼬박 이레 동안 병동에 갇혀 살았다. 아침저녁 뜨고 지는 해를 창문 너머로만 봐야 했다. 그런데 옆자리 환우 밥 먹고 담배 챙겨 나갔다 오더란 말이지.. 무슨 비밀 통로라도 있나 따라나섰는데 글쎄 건물 밖 출입이 가능하더라는.. 나는 기것도 모르고 갇혀 살았던 것이다. 그래도 깜방보다는 낫다 생각하면서.. 여드레만에 바깥 바람을 쐰다. 밖은 바..
나이롱이 되어버린 환자를 아시오?
나이롱이 되어버린 환자를 아시오?
2022.08.31난생처음 뼈가 부러지고, 난생처음 겪어보는 병원 생활, 어느덧 열흘이 지났다. 처음 닷새 가량은 이를 악물고 나무늘보처럼 살았다. 눕는 것, 일어나는 것, 자세를 바꾸는 몸놀림 하나하나가 전쟁이었다. 자다가 일어날 때면 갈빗대에서 우두두둑 서까래 분질러지는 소리가 나고 눈에서는 불이 튀고 입이 쩍 벌어졌다. 깊은 잠을 잘 수 없고 반드시 너댓 번은 일어나 통증과 싸운 후에야 아침이 밝았다. 주삿바늘을 통해 각종 약물이 일거에 투여되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럴 때면 내가 대체 무엇과 싸우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 무엇도 병원에 들어와 처음으로 똥 누던 날의 참담함에는 미치지 못하리니.. 어찌어찌 밑을 닦고 나니 기진맥진, 살아 숨 쉬며 먹고 싸는 것에 대한 깊은 회한이 ..
참줄나비
참줄나비
2022.08.268월 중, 하순 무렵 나비 보러 한 번은 가고 싶었으나 결국 못 가고 만다. 올해 나비 보러 길을 나서는 일은 이제 아마 없을 게다. 내년에도 나비는 날아다닐지니 아쉬워 말지어다. 이름표를 붙이지 못한 녀석들, 순위에서 밀려 제껴젔던 녀석들 들여다보는 것도 일이다. 오늘도 투쟁전선에서 동분서주 고생하고 있을 동지들에겐 민망한 일이지만 예기치 않은 병원 생활이 가져다준 행운이라 생각하자. 참줄나비, 진짜 줄나비라는 겐가? 경기도, 충청부 일부 지역과 강원도 동. 북부 지역에 분포, 산지의 계곡 주변 잡목림 숲에 서식,먹이식물은 올괴불나무, 연 1회 6~8월 발생하며 애벌레로 월동한다. 한반도에는 중.북부지방에 국지적으로 분포하는 종이나,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서도 관찰기록(김명희, 1996: 36)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