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놀고..
애기무시 얼지
애기무시 얼지
2022.09.29애기무시 한 보따리가 내게로 왔다. 영태가 돈 좀 만져볼 요량으로 숨었단디, 좌우튼.. 애기무시는 '어린 무', 아삭한 것이 생으로 막 집어먹어도 맛나다. 쌈으로 혹은 고추장 넣고 쓱쓱 밥 비벼먹어도 되겄고.. 그래도 끕이 있제, 홀애비 3년에 얼지 정도는 버물러야제~ 암만! 애기무시 한 주먹 물에 헹궈 다진 마늘, 조선간장, 고춧가루, 깨소금, 대파, 참기름.. 그냥 먹기는 맛이 째까 거시기한 비트 한 조각 썰어 넣고, 오미자청 적당량. 각각의 양념이야 입맛대로 양을 조절하면 되겠는데 홀애비 3년에 손맛은 언감생심, 손에 묻어날 양념조차 아까 젓가락으로 뙤작뙤작.. 이쁘게 접시에 담아 한 상 뒀다 먹을까 했으나 마저 다 묵어부렀네. 얼지는 얼른 묵어부러야제~ 암만! 거 참 맛나네. 어리다고 히피 보지 말자
변화무쌍 가을 하늘
변화무쌍 가을 하늘
2022.09.03병원 생활 2주째, 나이롱이 되고도 한 주가 지났다. 지나고 나니 쏜살같다. 병실, 병동, 병원.. 활동 범위를 제아무리 넓힌다 한들 병원 울타리, 하루 2만보 이상을 걷고 또 걷지만 다람쥐 쳇바퀴.. 그럴수록 눈길은 더 멀리, 머얼리 산과 하늘에 가 닿는다. 요즘 하늘 변화무쌍하여 보는 재미가 있다. 백두대간 너머에서 해 올라오고.. 교룡산 너머로 해 떨어진다. 꼬박 이레 동안 병동에 갇혀 살았다. 아침저녁 뜨고 지는 해를 창문 너머로만 봐야 했다. 그런데 옆자리 환우 밥 먹고 담배 챙겨 나갔다 오더란 말이지.. 무슨 비밀 통로라도 있나 따라나섰는데 글쎄 건물 밖 출입이 가능하더라는.. 나는 기것도 모르고 갇혀 살았던 것이다. 그래도 깜방보다는 낫다 생각하면서.. 여드레만에 바깥 바람을 쐰다. 밖은 바..
나이롱이 되어버린 환자를 아시오?
나이롱이 되어버린 환자를 아시오?
2022.08.31난생처음 뼈가 부러지고, 난생처음 겪어보는 병원 생활, 어느덧 열흘이 지났다. 처음 닷새 가량은 이를 악물고 나무늘보처럼 살았다. 눕는 것, 일어나는 것, 자세를 바꾸는 몸놀림 하나하나가 전쟁이었다. 자다가 일어날 때면 갈빗대에서 우두두둑 서까래 분질러지는 소리가 나고 눈에서는 불이 튀고 입이 쩍 벌어졌다. 깊은 잠을 잘 수 없고 반드시 너댓 번은 일어나 통증과 싸운 후에야 아침이 밝았다. 주삿바늘을 통해 각종 약물이 일거에 투여되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그럴 때면 내가 대체 무엇과 싸우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 무엇도 병원에 들어와 처음으로 똥 누던 날의 참담함에는 미치지 못하리니.. 어찌어찌 밑을 닦고 나니 기진맥진, 살아 숨 쉬며 먹고 싸는 것에 대한 깊은 회한이 ..
난생처음 병원 신세
난생처음 병원 신세
2022.08.23뱀사골에는 설핏 가을이 내리고 있었다. 은연중 비도 내리고.. 출발할 땐 내리지 않던 비가 굵어졌다. 세찬 빗줄기를 뚫고 우리는 단심 폭포에 도착했다. 단심 폭포에 좀 더 가까이 가고 싶었다. 사고는 순간에 일어났다. 나는 바위에서 미끄러져 추락했고 한동안 숨을 쉬지 못했다. 내 뒤에 서 있던 이의 비명 소리를 들은 듯한데 내가 내지른 비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오늘 여기서 이렇게 죽는 건가 생각되었다. 숨을 가다듬으며 몸을 일으키려 애썼으나 딸싹도 할 수 없다. 신발 한 쪽으로 물이 흘러 들어오는 것이 몹시 불쾌했지만 역시 마음 뿐이다. 놀란 사람들이 달려오고 여기저기서 구원의 손길이 뻗어왔으나 어느 손 하나 쉬 잡을 수 없었다. 내 몸의 상태를 스스로 가늠하며 온전히 내 힘으로 일어나야 했다. 얼마..
선운사에서..
선운사에서..
2022.06.16얼마 만인가? 사진기 챙겨 들고 숲을 살피며 할랑할랑 걷는다. 선운사 입구, 도솔천 너머 숲이 싱그럽고 울창하다.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붉은배새매, 매번 생각한다. 붉은코새매로 이름을 바꽈야 하지 않을까? 안창 은밀한 곳에 숨어 있는 녀석, 붉은배새매 유조. 노란색 눈테가 없는 것이 결정적 증거가 된다. 앞자리 앉은 성조와 무관하지 않은 듯.. 어치에게 발각돼 이리저리 쫓겨 다닌다. 어미새 도와주지 않더라. 너 알아서 하라는 건지, 내놓은 자식이라는 건지.. 뱁새, 늘 유쾌한 녀석들.. 다람쥐는 늘 뭔가를 오물거리고.. 큰줄흰나비 암컷, 배를 추켜세웠다. 나는 이미 수태한 몸이라는 짝짓기 거부 행동. 아랑곳하지 않고 수컷 두 마리 날아든다. 교접을 시도하는 수컷, 이런 경우 수컷이 포기하고 물러날 수밖..
사진기를 바꽜다.
사진기를 바꽜다.
2022.04.15공장에 간 사진기는 돌아올 줄 모르고 기다림에 지쳐가던 어느 날 느닷없이 날아와 꽂힌 니콘 D500 + 500mm 5.6 pf. 천신만고 우여곡절 끝에 장만한 강력한 조합, 작고 가벼우며 저렴하지만 힘 센 녀석. 첫날 첫 사진들.. 사진 찍기 몹시 편하더라. 손에 익으면 더 쉬워질 터, 사진기를 바꾼 건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더라. 마당 가상 동백이 꽃을 활짝 피웠다. 직박구리 한 마리 꽃 깊숙이 주둥이 밀어넣고 꿀을 빨아먹는다. 지금은 이동 시기, 되지빠귀 울음소리 동네 가득 낭자하더니 사진기 앞으로 날아와 자세를 잡는다. 날 좀 바라봐~ 날 좀 찍어봐~ 풀씨 몇 개 발라먹더니 이내 휙 하고 날아가 버린다. 지붕 위의 참새, 기왓장 아래 어딘가 집을 마련해놓고 사랑을 나눈다. 봄은 번식의 계절. 눈에 ..
봄비 나리던 날
봄비 나리던 날
2022.03.13간밤 달무리 지더니 점드락 봄비가 오락가락, 메마른 땅을 적시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그래도 꽃들은 앞다퉈 저마다 존재감을 드러내고 나는 사진기를 손에 쥐었다. 집안 곳곳 산수유 물기를 한껏 머금고 샛노래졌다. 마당 한구석 잔뜩 부풀어 오른 동백꽃 봉오리, 나도 한껏 부풀어 올라 선운사엘 갔다. 막걸리 한 잔 적시고.. 대웅전 뒤 동백숲, 선운사 동백은 벌써 폈더라. 참으로 붉기도 하다. 저 산에도 화색이 돌 것이다, 아마도 부지불식간에.. 이 담벼락도 초록초록해질 것이고.. 사람들 통 안 가는 은밀하고 으슥한 곳, 굴뚝새 한 마리 촐랑대며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한참을 쫓아다녔다, 봄비를 맞으며.. 끝내 잡지 못했다, 공장에 간 렌즈가 참으로 그리웠다. 동박새는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더란 말이지.. 곱기..
콩나물국
콩나물국
2021.12.01나는 콩나물국을 좋아한다. 하여 이따금 콩나물을 사곤 한다. 허나 집에서 밥 먹는 일이 가물에 콩 나듯 하니 자칫 버리기 일쑤, 콩나물 사 둔 지 또다시 일주일. 콩나물국을 끓인다, 늦은 밤이었다. 콩나물 한 움큼, 소금 간 적당히, 뚜껑 닫고 팔팔.. 이때다 싶을 즈음 다진 마늘 적당량, 청양고추 서너 개, 부족한 간은 새우젓으로.. 시원하고 칼칼한 콩나물국, 이건 뭐 식은 죽 먹기다. 단지 콩나물국이 끓었을 뿐인데 술 생각이 잇따른다. 이럴 양이면 황태를 좀 넣을 걸.. 눈치 볼 사람, 망설일 이유 없다. 콩나물국 한 보새기, 술 한 잔 딱 한 잔. 속이 훈훈해진다. 이건 약이다. 겨울비는 나리고..
메밀국죽, 국과 죽의 경계에 머물다.
메밀국죽, 국과 죽의 경계에 머물다.
2021.10.22의문의 배앓이 이후, 나았다고는 하나 여파가 있다. 굶는 게 가장 편할 듯 하나 뭐라도 먹는 쪽으로 결정하고 속 편할 음식을 찾는다. "메밀국죽 먹어요" 그 말에 따르기로 했다. 나에게는 메밀쌀이 있다. 메밀쌀 살포시 두 주먹 집어 열심히 조랭이질, 정선된 메밀쌀은 흡사 싸레기다. 메밀을 껍질째 삶아서 다시 딱딱하게 말려 도정한 것이라 했다. 하여 요즘 시판되는 메밀쌀과는 많이 달라보인다. 이 메밀쌀 두 줌에도 정선 농민의 땀이 배어 있다. 멸치 다시물 만들어 메밀쌀 넣고 끓이기 시작한다. 물은 과도하게 많다 싶을 정도가 적당하다. 된장 아까라 말고 한 숟가락 담뿍 떠 넣는다. 된장 만으로 간을 하니 감이 중요하다. 열심히 끓이다가 메밀쌀이 부풀어 퍼질 무렵 약간의 묵은지, 청양고추, 대파를 썰어 넣는다..
장칼국수 말고 장국수
장칼국수 말고 장국수
2021.10.07날이 꾸무럭하니 장칼국수를 먹고 싶은데 칼국수를 만들 재간은 없고 냉장고에 생면은 있다. 칼국수나 국수나 다 같은 밀가리 것이니 뭐 거기서 거기겄지. 장국을 먼저 만들고 국수를 넣으면 그게 장국수 아니겠는가 생각한다. 먼저 멸치 다시물에 양파 작은 것 하나, 양송이 두 개. 콩나물 반 주먹.. 더 넣을 게 없네. 이제 생면을 넣고 고추장과 된장으로 간을 한다. 고추장은 매콤함과 달콤함을, 된장으로는 간을 맞춘다. 고추장을 한 숟가락 넣었다면 된장은 반 숟갈 정도.. 조리 시간이라야 물 끓는 시간, 국수 삶아지는 시간.. 나는 이런 간편한 음식이 좋다. 잠깐 사이 뜨끈하고 국물 걸죽한 장국수가 만들어졌다. 늘 양 조절에 실패하지만 남기는 법은 없다. 요즘 부쩍 밀가리 것이 땡긴다. 살찔까 걱정이지만 다시 ..
가을엔 국수를..
가을엔 국수를..
2021.10.03가을이다. 나는 당산나무 아래 앉아 있다. 들판은 황금빛, 시원한 바람 솔솔 불어온다. 들판 너머 두승산이 둥실 솟았다. 잔디밭 가상자리 호박 두 덩이 넝쿨째 들어왔다. 엊그제만 해도 영락 없는 애호박이었는데 며칠 사이 몰라보게 컸다. 비가 내린 탓이다. 호박 한 덩이 따 들고 생각한다. 어찌 먹어야 하나? 나는 국수를 좋아한다. 더구나 가을이니 국수가 좋겠다. 멸치 국물에 새우젓 간, 호박 썰어 넣고 마른 새우에 청양고추로 풍미를 더한다. 냉장고에 생면이 있다. 면은 따로 삶아 찬물에 가신 후 끓는 국물에 풍덩.. 상이 차려졌다.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칼국수 면이라야 했는데 아쉽다. 그래도 맛있다. 잘 먹었다. 이렇게 끼니 하나를 해결한다.
서울로 가는 길
서울로 가는 길
2021.09.111970년대 초반, 그 시절 서울로 가는 길은 어떤 길이었을까? 농촌의 수많은 청춘남녀와 밤 봇짐 싼 일가족을 실은 새벽 열차가 서울역에 도착하면 생면부지의 땅에 내려야 하는 그들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새 세상에 대한 경외와 새로운 삶에 대한 포부도 있었을 것이고 고향을 잃은 비탄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이들의 마음을 알 수 없다. 다만 해마다 명절이면 양손에 선물 보따리, 신작로 빡빡하게 고향집으로 향하던 귀성 인파의 종종걸음이 눈에 선연할 따름이다. 나는 1978년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갔다. 1989년 다시 돌아올 때까지 나는 줄곧 방학이 그리운 학생이었다. 나는 향수병을 심하게 앓았더랬다. 이 노래를 알고 난 이후 꽤 오랫동안 입에 달고 살다시피 했다. 나는 '앞서가는 누렁아 왜 따라나서는 ..